심심할 때 글쓰기
속 시원하면서 쓸쓸하고 설레면서도 불안한 이 감정. 긍정과 부정을 비롯한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 번에 오는 이 상황이 처음이라 기분이 묘하다.
2022년 02월 20일, 나는 또다시 인생의 갈림길에 섰다. 현재의 안정을 유지할 것인지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것인지. 스물아홉이란 숫자가 적지 않게 느껴진다. 지금 도전하지 않는다면 나이의 무게에 짓눌려 영영 새로운 것은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나는 결단을 내렸다.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인지한 순간 온몸에 긴장이 스며든다. 심장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진다. 땀샘에 땀에 나기 시작한다. 잘못한 게 없지만 이상하게 떨린다. 일하는 중에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말, '저 그만두려고 하는데요…….' 해야 할 말을 정리했지만 쉽사리 입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삼초의 심호흡 끝에 무거운 입을 움직인다.
"작가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무슨 일이야?"
"저 일을 그만두려고 하는데요……."
"어?"
그대로 굳은 작가님의 얼굴과 시간이 멈춘듯한 이 순간 불편한 상황이 찾아오자 이제야 실감 난다. 아, 나 진짜로 저질렀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 없는 작가님은 우선 알겠다며 시간을 달라 말씀하셨다. 퇴근까지 30분, 우리는 일 대신 이야기를 했다. 처음 입사하고 지금까지의 일들을 소가 되새김질하듯 천천히 주고받았다.
"상씨는 언제가 가장 힘들었어?"
"일이 힘들다기보다는…… 역시 사람 상대하는 게 힘들죠."
"그치?"
"어머님들, 특히 마음을 담아 말씀드려도 귓등으로 안 듣고 바라는 건 많은 부모님들이 가장 힘들었어요."
"나도 참 속상해. 나 때문에, 일 때문에 그만두는 게 아니라 어머님들 때문에 직원이 떠날 때마다 참 그래."
삼십 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역대급으로 기억에 남는 부모님들을 순서대로 말했다. 코로나 시국에 무슨 사진이냐며 한껏 성질내시면서 이곳저곳 여행 다녔던 어머님, 잠 오는 아기를 억지로 깨우고 사진을 찍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섯 시간씩 삼 일 동안 기분 나쁘다고 전화했던 어머님, 다른 스튜디오에선 서비스로 이것저것 챙겨주는데 여기는 왜 안 해주냐는 어머님(어머님, 우린 대형 스튜디오의 가격의 절반의 절반이잖아요…….), 의상이 맘에 안 든다면서 열 벌 넘게 옷을 갈아입으면서 뒤에서 핸드폰으로 몰래 사진을 찍던 어머님(중간중간 핸드폰으로 찍고 나중에 인스타에는 맘에 들었다고 올리셨다…….), 사람을 무서워하니 사람 없이 사진을 찍어 달라던 어머님, 애초에 웃는 모습이 거의 없는 아기를 어떻게든 웃기라고 하셨던 어머님, 스튜디오만 오면 아기가 운다던 어머님(돌잔치 장소에 가니까 마찬가지로 울더라.), 아기가 안 웃어서 기분이 나쁘니 자기 기분을 책임지라던 어머님.
짧게 썼지만 참 다양하고 많은 어머님을 만났다. 물론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던 어머님도 계셨지만 대게는 내 마음을 후벼파는 말과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 덕에 탈모도 세게 왔고, 우울증 약을 먹을 정도로 내 멘탈은 온전치 못했다. 더 이상 있다간 정말로 내가 죽을 것 같아 나왔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으면 손님들이 문제 되는 경우가 많고, 손님들이 괜찮으면 같이 일하는 사람과 트러블이 생긴다. 트러블은 없을 수밖에 없다는 것.
뭐 주저리주저리 썼지만 그냥 하소연 좀 끄적였다. 나 꽤 힘들었어요. 그래도 오래 버텼어요. 그리고 늦었지만 새로운 걸 시작하려 해요. 그러니까 그냥 고생했다고,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거라 말해줘요. 그냥, 그냥 토닥여주세요. 새로움에 대한 설렘보단 불안함이 컸지만 그래도 용기 냈어요. 그러니까 그냥…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