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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 아이 Feb 13. 2023

운전하며 보이는 것들

운전하는 일상

운전은 내 주말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마흔 살에 처음 딴 운전면허. 요즘 나는 주말마다 내가 익숙하게 들리는 곳들을 라이딩하며 운전하는 재미를 느껴가는 중이다.


누군가는 처음에만 운전이 재밌는 거라 말한다. 그렇다. 처음이라서 재밌는 게 물론 있을 거다. 하지만, 운전면허를 어렵게 땄기에, 지금 운전하는 재미를 앞으로도 계속 간직하고 느끼고 싶다.




뚜벅이 시절, 책 한 권을 사 커피 한잔을 마실 여유와 무작정 걸으며 때때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내 삶이 정말 행복할 거란 생각을 하곤 했다. 직장을 마치고 대충 혼자 저녁을 차려먹고,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을 무작정 걷는 것이 참 좋았다.


10바퀴, 20바퀴, 30바퀴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나면 회사에서 힘들었던 생각, 꼬일 대로 꼬인 생각이 이내 정리되곤 했다. 걸으면 엔도르핀이 솟는다는 말. 나는 그 말을 굳게 믿었고, 직장생활이 고단할 때, 왜 나는 짝은 만나지 못할까 고민할 때 그렇게 무작정 동네 운동장을 생각 없이 돌 곤 했다.





남편과 연애시절 남편의 차를 타게 되면서 걷는 걸 무척 좋아했던 나의 생각도 점차 바뀌어 갔다.


‘차라는 게 이렇게 편리한 거구나’.


추운 겨울에 지하철 역까지 오랫동안 걷지 않아도 되고, 무더운 여름날 땀을 삐질 삐질 흘리지 않고도 뽀송뽀송한 피부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편리함좋았다.

자연스럽게 걷는 일상과는 조금씩 멀어져 갔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운전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며, 그 차 안에서 느끼는 온기에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졌다.





마흔 살에 늦깎이 운전면허를 딴 이후, 가 운전하며 차를 몰아보는 것도 요즘 또 다른 재미다.


이번 설에 경북 포항에 있는 친정에 내려가서 포항 근처 해안 도로를 처음 운전해 보았다.

스스로 운전을 하겠다기보다는 날 운전연수 시키려는 남편의 등살에 밀려 얼떨결에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친정에 내려가면 늘 들리던 바다였는데, 조수석 오른쪽에 보였던 포항 호미곶 바다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 이런 맛에 운전하는 거구나.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좋았던 걸까. 그날 본 파도는 내가 여태까지 봤던 파도와 전혀 달랐다. 파도가 하얀 거품을 물고 있는 모습. 나는 그것이 빛에 파도가 비쳐서 하얀색으로 보이는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그것이 부서지는 파도의 모습이라고 한다. 파도가 서질 때 하얗게 보인다는 거다. 여태껏 수십 번 수백 번 포항 바다를 보았지만 그런 파도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부서지는 파도에 감격하며 꼬불꼬불 해안 도로에서의 행복한 드라이빙을 마쳤다.




운전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서 어느 때가 더 행복하냐고 한다면 나는 정확히 답을 못할 거 같다.


뚜벅이 시절엔 그때 나름의 행복과 운치가 있었고, 차를 타면서부터는 나름의 편리함이 있다. 내가 운전하면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뿌듯함, 속도를 즐기는 짜릿함도 있고 말이다.


앞으로도 때로는 걷고, 때로는 운전하며 소중한 내 일상을 즐겨생각이다. 아직은 주차가 서툴지만, 내가 남편 없이 혼자 운전할 수 있을 때에는 경치 좋은 곳에 차를 주차해 두고 내가 뚜벅이 시절 즐기던 책과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만끽하며 그날을 더욱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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