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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Jan 19. 2024

에필로그

하루 늦은 연재글을 마치며

비가 추적추적 오는 겨울밤, 나서는 길 위로 떨어지는 물기가 마음속까지 스며들었다. 큰 우산을 펼쳐도 옷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다 막을 수 없다.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한때 스스로를 삶이라는 여정 속 실격한 인간으로 규정하고 살 자격을 운운했다. 속에서 떠오르는 모든 감정을 ‘긍정적‘ 과 ’ 부정적‘이라는 기준으로 나누고 오직 안도와 수치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살았다. 인간의 감정이 흑과 백으로 나뉠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나의 욕구로 발현되는 감정들에 ‘나쁜’이란 꼬리표를 달아 무의식의 저편으로 넣어두었다.


적재 용량을 초과해 버린 무의식이 우울로, 자살사고로, 히스테리로 발현될 때 삶 속에 갇혀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 매일 죽고 싶은 나와 사투를 벌일 때, 그런 나를 안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베이스캠프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진지하게 버텨준 사람들. 모진 시간들 덕분에 내 삶 깊숙이 자리 잡은 그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어쩐지 깊은 갱도에 갇혔다가 다이아몬드 하나를 손에 쥐고 구조된 기분이랄까. 함께 버텨준 그들 덕분에 주어진 삶 앞에서 결국 고개 숙여 감사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지지도 한 몫 했지만 나를 이 땅에 두 발 붙이고 살 수 있게 해 준 또 하나의 중력은 글쓰기였다. 글로 나의 아픔에 대한 모든 단서들을 문자화 시키고 문장으로 나열하자, 혼란스러운 마음의 길에 이정표가 생기고 신호등이 생겼다. 이제 주어진 시간이 촌음이라도 나는 감정 이면에 숨어 있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 때문에 더는 이분법으로 나의 감정을 분류해서 무의식으로 집어 넣지 않는다.


우울증 점수는 내게 더이상 의미 없은 기준이 되었다. 그 우울한 감정마저 내게는 나를 알아가는 귀한 단서가 되었으므로. 처음 <우울의 무게> 연재를 시작 할 때 에필로그의 마지막 단락이 무척 궁금했는데, 이렇게 끝을 맺을 수 있다니, 열길 불 속 보다 한길 사람 속이 어렵다는 명제를 증명한 기분이다.


아무튼 나는 내가 어렵지만, 잘 데리고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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