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초록 Apr 29. 2023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쾌락독서》 리뷰


쾌락독서

저자 문유석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18.12.12

페이지 264


새해 계획을 세울 때 늘 들어가는 항목이 독서다. 막연한 계획은 실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대략적인 연간 목표 완독 권수를 정한다. 연간 목표 권수를 12로 나눈 월 단위 할당량(?)을 기준으로 독서 페이스를 점검한다. (참고로 이 리뷰를 쓰는 시점에 할당량 대비 약 두 권 뒤처져 있다) 독서와 멀어지는 삶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종종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같은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는 나를 지인이 발견하고 말을 걸면 '할당량을 못 채워서'라며 변명처럼 말하곤 한다. 할당량이라니, 유쾌한 단어로는 들리지 않는다. 약간 업무나 숙제처럼 자율보다는 강제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독서는 나에게 하기 싫지만 도움이 되니까 억지로 하는 무언가일까? 나는 왜 책을 읽으려고 할까.


《쾌락독서》는 내가 왜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지를 상기시켰다. 단순한 이유다. 재미있어서였다. 《쾌락독서》라는 제목 그대로, 저자에게 책이란 즐거운 놀이였다고 한다. 심심해서 재미로 책을 읽었고 재미없으면 덮어버렸다는 부분을 보고 어렸을 때 나도 그랬다는 것을 떠올렸다. 부모님이 사둔 별별 전집류를 재미로 읽었다. 전집으로 함께 엮였어도 좋아하는 편과 재미없는 편이 있었다. 맘에 드는 내용이 있는 권은 열 번 넘게도 읽었고 흥미를 못 느낀 권은 거의 새 책처럼 책장에 꽂혀 있었다. 전집을 다 독파해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독서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도 의식도 하지 않고 그저 책읽기를 즐겼던 시절이었다. 장담하건대 이 시기의 독서 경험이 지금 나라는 사람의 성향을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이미 엄청나게 공감 가는 말들이 적혀 있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의 세계로 진입했다. 저자는 아무래도 책에 대한 생각이 나와 너무나 비슷한 사람인 것 같았다. 저자의 전작인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을 때의 '코드가 맞는다'는 느낌은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예전에 읽은 책들을 들춰볼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남아 있는 기억들만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는 부분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과 똑같아서 놀랐다.

(전략)
그 책들은 그저 그 시기에 거기 있었기에 우연히 내게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지나간 연인들도 그렇듯 말이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지나간 인연들이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 안에 생겨났던 그 순간의 감정들이다.


간혹 독서 관련 도서 중에는 책 속에서 말하는 책을 읽지 않으면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쾌락독서》는 그런 부분이 없어서 좋았다. 내가 아예 존재조차 몰랐던 책에 대해서 다룰 때 충분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서 물 흐르듯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부분이 그랬다. 하루키 책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인데도 이해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심지어 인상적이어서 따로 문단을 찍어두기까지 했다.


책을 선택할 때 목차를 먼저 읽어보는 습관이 있다. 《쾌락독서》의 목차에서 '나는 간접경험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다'는 소제목이 가장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서 나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책을 통해 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함으로써 공감의 범위를 넓힌다는 건 우리가 익히 아는 독서의 긍정적 효과다. 현실의 부조리나 타인의 고통을 간접 경험하는 독서가 과연 쾌락독서일 수 있을까. 즐겁지만은 않은 독서를 하는 이유가 의무감만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이유가 모범답안(?)이자 나의 답이기도 해서, 하루키에 대해서 문유석 저자가 썼던 그 심정 그대로, '책을 읽으며 마주치게 되는 순간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런 독서를 '쾌락'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는 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의무감만으로 읽는 것은 아니다. 뭐랄까,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걷고 싶지는 않다는 생존 본능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몰라서 남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만은 하고 싶지 않다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잠시라도 타인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은 나를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구원해 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의 다양한 모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