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저자 김멜라, 공현진, 김기태, 김남숙, 김지연, 성해나, 전지영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24.3.31.
페이지 372
여러 작가의 작품을 엮은 작품집은 아무래도 단일 작가의 작품집보다 작품 간 만족도의 편차가 크다. 매년 출간되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도 마찬가지다. 그 만족도 편차를 감안하고서라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매년 읽는 이유는 아직 모르는 작가 중에 내 마음에 드는 소설가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흡사 스카우터 같은 이 독서 방식이 유의미했기 때문에 올해도 어김없이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습관처럼 독서 목록에 추가했다.
<이응 이응>은 성욕을 해소해 주는 기계 이응이 보편화한 세계의 이야기다. 섹슈얼리티는 인간과 사회에서 결코 경시할 수 없는 거대한 담론이다. 이 소설의 설정처럼 이응이 세상에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우린 어떤 상상을 해볼 수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범죄의 감소 효과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성범죄의 본질은 성욕이 아니라 권력 과시욕에 있으므로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통념상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응 이응>은 그런 단순한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이응 지지자들의 “성욕을 풀려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열등한 짓은 그만둡시다!”라는 주장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것뿐인가. 이응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세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어떤 성별 정체성으로 즐길지, 성적 끌림 대상, 정서적 끌림 대상, 성적 자극의 부위, ASMR 같은 테마 설정까지 다양하다. 성적 정체성이나 성적 끌림 대상 같은 걸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은 나 같은 이들은 이런 세부 설정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즉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세부적으로 알고 있어야 세팅도 가능하다. 물론 추천 모드도 있다지만. 이런 담론들을 꺼내보여 주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나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마음이 가는 소설이다. ‘어차피 나 사는 동안 인간 또는 한국이 망할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요즘 잦아졌는데 제목을 본 순간 친밀감이 들었다. 수영 강습 현장에서 ‘잘하는 사람은 앞줄, 못하는 사람은 뒷줄’로 서야 하는 암묵적 룰을 그린 부분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능력주의를 한 번에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희주와 주호의 선량함이 희귀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이 사회의 슬픈 점이었다.
<보편 교양>의 반전은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로 충격이었다. ‘고전 읽기’ 과목을 통해 ‘지문’이 아니라 ‘책’을 다루고 싶어 하고 인문학을 중시하는 곽의 생각이 나와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곽은 출세만을 좇는 세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은 그런 이들과는 다른 교양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이런 교양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외로운 지식인으로 자기 자신을 포지셔닝한다.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는 곽의 위선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 오히려 곽의 생각이나 행동에 공감하는 쪽이었다. 그래서 그의 위선이 드러나는 결말에 충격을 받았다. 자본론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수업을 했다는 자기반성으로 이어지는 유럽 언어로 된 이름의 디저트에 대한 묘사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경박한 단맛이 아니라 깊이가 있고 구조가 있는, 하지만 묘사해보려고 하면 이미 여운만 남기고 사라져서 어쩐지 조금 외로워지는 달콤함. 사람을 전혀 파괴하지 않고도 패배시킬 수 있는 달콤함.
또 다른 충격을 주었던 소설이 <파주>였다. 군복무 중에 당한 괴롭힘에 대한 보상을 구체적인 기간과 액수로 청구한다는 큰 줄기가 일단 흥미로웠다. 어딘가에 있을 법하면서도 평범하지는 않은 이야기의 다음을 우리는 궁금해한다. 심지어 화자는 가해자의 여자친구다. 화자와 중심인물 사이의 절묘한 거리감이 이 소설의 큰 미덕이다. 단순 복수극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존엄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확장하는 데에 기여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야기라는 면에서도, 메시지라는 면에서도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어이없는 에피소드를 하나 말하고 시작하자면 목차에 있는 <반려빚>이라는 제목을 ‘반려빛’이라고 잘못 안 채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마음속 어딘가에 ‘반려’라는 말에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단어가 붙는다고 생각했나 보다. ‘빛을 반려로 삼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은 어마어마한 착각이었다. 빛이 아닌 빚이었음을 깨달은 후에는 이 소설에 대한 이미지가 명료해졌다. 빚도 능력이라며 빚 권하는 사회 분위기, 기본적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전세 사기를 비롯한 각종 사기가 판치는 비도덕적 자본주의 환경 속에서 성 소수자 청년 여성으로 살아가다 반려자는 떠나고 ‘반려빚’과 함께 하게 된 정현의 이야기는 결코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혼모노’라는 일본어의 사전적 의미는 ‘진짜’다. 한국 소설 제목이 <혼모노>라니 무슨 이야기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는데,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무속인에 대해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다룬 소설을 처음 읽었다. 얼마나 실제 무속인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렸는가는 알 수 없지만, 아무 관련지식이 없는 독자가 보기에는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했다.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하고 다음에 어떻게 될지가 궁금하다는 점에서 소설적으로 힘이 있었다. 제목이 왜 혼모노인지를 납득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다소 설명적일 수도 있는 메시지였음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재미있게 읽었다.
<언캐니 밸리>를 읽고 나면 찝찝하다. 이 찝찝함이 <언캐니 밸리>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시선 권력의 다중적 교차가 이루어지는데, 제목대로 불쾌한 지점을 건드린다. 읽으면서 유쾌한 소설은 아니었다. 이 ‘유쾌하지 않음’조차도 이 소설의 특장점임은 분명하다.
올해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한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다양함’을 택하겠다. 보통 단편소설 여러 개가 실린 작품집을 다 읽고 나서 목차의 제목을 보면서 이 소설이 뭐였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거나 헷갈리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각 소설의 주요 이미지가 머리에 뚜렷하게 떠올랐다. 저마다 다 다르게 반짝이는 작품들을 한데 모은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작품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