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로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오는 남해의 한 바닷가. 다들 한 번씩 해본다는 서핑스쿨 원데이 클래스 수업 중 밀려오는 파도가 무서워 못하겠다며 서핑보드 위에서 벌벌 떠는 나에게 강사가 한 말이다. 평소 물을 무서워하긴 하지만 한 달 정도 수영장을 다닌 적이 있고, 물속에 깊게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괜찮을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다. 무거운 서핑보드를 줄로 발과 연결해 묶고, 뒤에서 오는 파도를 보지 못한 채 단번에 일어나야 한다니. 슈트 안에 입은 수영복이 불편해서 다리를 펴는 것도 어색했고, 해변가 가까이로 갈수록 파도가 말리는 현상이 있어 넘어지면 보드에 맞아 다친다는 말도 무서웠다. 예상보다 짠 물도, 자꾸만 왼쪽으로 흘러가는 조류도, 저런 말을 툭 내뱉는 강사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수업 중간에 나와서 모래 위에 누워버렸다. ‘다 마음에 안 들어. 겨우 배까지 밖에 안 오는 물이 뭐가 무섭다고. 나도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샤워로 짠 기운을 날려버리고 서울 올라가면 무조건 수영부터 다시 배울 거라고 다짐했다. 물개가 되어 즐기면서 서핑을 하고 말겠다고. 사실 서핑과 수영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영을 잘하면 물이 무섭지 않을 것이고, 그럼 서핑도 지금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왔다.
집 근처 구립 수영장을 알아보니 코로나 19로 수영장을 비롯한 각종 체육시설들이 휴관이었다. 수영은 영 아닌가 싶었는데, 문득 언덕 아래에 있는 수영장이 떠올랐다. 맞다. 재활병원에 있는 수영장! 때마침 월말이니 회원 모집 중에 있을 것 같아 전화를 했다. 아침 8시 수업이 열려있고, 곧 마감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 바로 결제 완료. 예전에 배웠던 구립 수영장에 비해 약 2배 정도 비싼 가격이었지만 두근두근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드디어 수영하는 날 아침. 아침을 먹고 출발할까 공복으로 갈까 고민하다 우유 하나를 챙겼다. 예전에 입던 수영복과 수모, 도수 수경, 샤워용품도 챙겼는데 이렇게 설렐 수가. 그렇게 수영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