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커홀릭 MONGS Sep 17. 2020

첫 사수가 생기다

RESET!  재입사하여 첫 사수가 생겼습니다.

내가 맡았던 바이어는 미국(뉴욕)의 MISSY 의류 바이어였다. 유럽팀이지만 유럽에 국한되지 말고 야심 차게 프로모션을 진행하여 뉴욕 바이어를 뚫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뉴요커들이 하루아침에 거래를 끊었다. 영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들을 속속들이 알 순 없었지만 나는 모든 구비서류 준비를 마친 상태여서 너무 황당했다.

뉴욕 바이어를 담당하셨던 송 차장님 하루아침에 얼굴이 흑색으로 변하셨고 주변에서는 "능력은 있어~ 그런데 운이 좋지 않았어."라며 안타까워하신다.
송 차장님은 경력으로 들어오신 지 1년 차이다. 회사에서는 능력을 보고 프로모션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스카우트하였다. 그런데 투자한 돈이 날아갔으니.... 의류 일이라는 게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다. 그 과정 속에서 무사히 제품이 선적될 때마다 보람을 느꼈다. 이번 일도 그중 하나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었다.

그날 오후 영업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퇴근 무렵 송 차장님이 권고사직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대체 그게 뭔데?" 너무 처음 듣는 말이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쉽게 말해 회사에서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2년 차 사원 아직 팀 내 막내, 처음 보는 광경에 어리둥절해 있었다. 그러다가 왜 그렇게 바이어가 거래를 끊었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지금 같으면 10가지도 넘는 이유를 나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2년 차의 눈에는 딱 2가지가 들어왔다.

첫째 : 너무 혼자 일하셔~
둘째 : 밑에 직원과의 불통

소통이 안된다면 절대 일을 잘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 송 차장님은 조용히 회사를 떠나셨다 이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쩔 수 없는 봉재인, 작게 회사 하나 차려서 나름의 영업방식으로 사업하신다고 하신다. 부디 소통하며 잘되시기를... 


"독일 바이어 0&0"은 우리에 주역 바이어이자 거래가 꽤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는 LONGRUN 바이어이다. 한국에 지사가 있었고, 1년에 평균 2번은 SS. FW 시즌에 맞춰 가격 미팅을 하러 한국을 방문한다. 그 방문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DEVELOP 샘플들은 쏟아져 나오고 있고, 강 과장님과 김대리님은 가격을 책정하고 디테일 정리에 또 정리를 하신다.

유럽팀 담당자들은 정말 눈 코 뜰세 없이 바빴다 인원을 충원할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인사팀에서 충원계획은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충원 없이 내부 인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회장님 말씀 이셨다. 아무래도 미국 프로모션의 실패가 원인인 것 같았다.
정말 안 뽑는 건가? 저 샘플 더미에 깔려 사는 김대리님은 어쩌나.. 너무 걱정스러웠다.

김대리님은 의상디자인을 전공하셨고 옷을 참 좋아하시고 옷도 잘 고르신다. 대학 졸업 후 디자이너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의류 벤더로 입사하셨다고 한다.
나와는 "수다 파트너" 우리는 정말 수다쟁이였다. 그걸로 스트레스를 풀곤 하였다. 그런데 일이 몰아닥치니 말수도 없어지고... 강 과장님과 부장님은 인원 충원 문제로 며칠째 고민을 하고 계신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니 강 과장님과 김대리님 책상 위에는 "DEVELOP SAMPLE LIST, 이미 수주받은 ORDER LIST, STYLE DETAIL SHEET, FABRIC COLOR SHEET, " 등등 미팅 준비를 위한 AGENDA가 쌓여갔다.

부장님께서 권 대리님을 부르신다. 한참 얘기하시더니 고개를 끄떡끄떡... 하지만 표정은 좋지 않다. 도대체 이 회사는 왜 조용할 날이 없는 걸까?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나는 살짝 권 대리님의 눈치가 보였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시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그냥 입 다물고 일이나 해야 한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자 내가 저녁 살게!" 권 대리님의 번개모임! 우리 서류 담당 4명은 너무 좋아했다.
야호~~~^^ 일단은 좋아했다. 무슨 일이 있긴 있는 거야.. 가보면 알겠지.

저녁을 먹으며 맥주도 한잔씩 함께 마셨다. 그러면서 대리님이 무거운 입을 떼신다.
"안나야, 너 내일부터 지금 업무 인수인계 김선배한테 하고 내일부턴 김대리 밑에서 업무 배우며 일해."
"너 업무 변경됐어!"

이제 겨우 일이 손에 익어 좀 편해지려 하는데, 업무가 바뀌었다고? 그것도 일복 터진 김대리님이랑? 나한테 왜 그러는 거지? 이 회사.... 나와 권 대리님의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 김선배가 얘길 꺼낸다. "안나야 좋겠다~ 나는 시켜달라고 해도 안 시켜주던데..."
"잘 생각해 보면 너한테 기회야 솔직히 서류 파트 중요하다고 얘긴 하지만 영업만큼은 아니야 이번 기회에 대우도 달라질 걸" 함께 있던 황 대리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회사에서는 영업부에서 서류 담당자들을 무역팀으로 분리하자는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권 대리님도 가끔 말씀 분리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뭐가 좋은지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회사를 계속 다니느냐 , 마느냐 둘 중 하나였던 것이다. 권 대리님은 내가 그만둘까 봐 살짝 눈물도 비치신다.. 이게 뭐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데 주변에서는 "잘 됐다, 부럽다, 그만두지 말고 영업해봐 김대리 하고도 잘 맞잖아"계속 얘길 하신다.

그렇게 저녁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2 차를 가자고 하시는데 나는 그냥 집으로 들어왔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생각을 하며,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영업을 배우고 싶은 건가? 아닌가?"
"김대리님과 일 동굴 속으로 함께 들어갈 용기가 있는가? 없는가?"

다음날 아침 출근 전까지 답을 내지 못했다. 발걸음은 무겁고 얼굴은 어두웠다. 엄마도 살짝 걱정하는 눈치였다. 김대리님은 출근과 동시에 나를 보더니 커피 하자고 부르신다.

"안나! 이게 뭔 일이가 싶지? 나도 네가 내 부사수로 오는 거 동의했어, 나랑 잘 맞을 것 같아서, 나한텐 네가 첫 부사수다. 그리고 성격상 넌 영업해야 해~"
"다시 입사했다고 생각하고 나랑 같이 해보자 죽인지 밥인지는 해보면 알겠지!"

김대리님 말속에서 이상한 끌림이 있었다. "해보고 후회해도 늦지 않아..."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렇게 다시 입사 한샘 치기로 맘먹는다.
오늘 나는 해외무역 영업부에 입사하였고, 첫 사수 김대리님과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의 커리어는 RESET 된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휴가를 반납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