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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홀릭 MONGS Oct 15. 2020

聲(성)帶(대)모임이 결성되다

워커홀릭 백수 되다

회사에는 활동이 활발한 동호회들이 한두 개씩은 있다. 당시 산악회와 볼링동호회가 대표적인 동호회이었다. 참여도도 높고, 두 개 동호회를 한꺼번에 가입하여 활동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나는 처음엔 산악회를 몇 번 따라다니가 나중에는 볼링동호회 활동을 좀 더 많이 했던 케이스이다. 동호회 안에서도 왜 소모임이 없겠는가, 그 안에서 마음이 맞고 결이 맞는 사람들은 또 따로 소모임을 결성하고 여행도 같이 간다. 왜냐면 우리끼리 있으면 재밌으니깐, 입김이 센 여자들 7명이 모여 Crew가 결성되었다 이름하야 성대 모임(성대는 대학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이다.


어느 해 겨울, 같은 부서 신대리님께서 "스키장 같이 갈래?" 하고 물어보신다. 나는 마침 스키장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터라 가고 싶었다. "누구누구 가는데요?라고 물었고 나를 포함해서 여자 6명이 간다고 한다. 그녀들이 누구인지 얼굴은 알고 있지만 왕례가 별로 없어서 친한 분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친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에 스키장을 따라갔다. 우린 퇴근 후 출발하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밤늦게 펜션에 도착했다. 마음 좋은 펜션 집주인께서 춥다고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놓아 주셔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장작불에 구운 고구마도 함께 주셔서 대충 저녁을 때우고 고구마와 초졸 한 술안주와 함께 우리는 동그랗게 모여 앉아 술자리를 가졌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니 회사 얘기부터 남자 얘기까지 끊이지 않고 술술 나온다. 누구와 누가 썸 탄다더라, 어디서 데이트하는 걸 봤다더라, 회사에 A과장이 거래처 직원과 사귄다더라 등등 귀가 솔깃한 얘기에 블랙홀처럼 빠져들었다. 막장은 아니지만 우리는 왜 남 얘기에 열광하는가? 답을 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 얘기를 안주삼아 술병을 비워갔다. 수다를 떨다 보면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얘기도 나오는 법, 남자 친구와 있었던 얘기도 털어놓다 보니 어쩌다 연애 상담소가 되어버린다.


이 모임의 사람들이 결이 같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었다. 수다의 소재는 계속 바뀌지만 대화가 끊어져 정적이 흐르거나, 갑분사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런 게 결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 아니겠는가! 갑자기 연애 상담하는 분위기가 되면 너도나도 연애 전문가 혹은 상담받으러 온 손님이 되어, 때로는 명쾌하게 때로는 욕을 먹고 바보 소리 들어가며 답을 듣게 된다. 중간중간 야한 얘기도 섞어가며 소리도 질러가며 웃고 떠들다가 목소리가 커진다. (술집에서 모였을 때 목소리가 너무 커서 경고나 쫓겨난 적도 있다는 얘기다.) 펜션에는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성. 대. 모. 임이라는 명칭은 그날 그 스키장 근처 펜션에서 만들어졌다. "성대"는 목의 성대를 지칭하는 것인데, 단순히 소리만 커서 생긴 이름은 아니다. 누군가 야한 얘길 하다가 "O기"를 "O대"라고 잘못 발음하는 바람에 다들 자질어졌다, 그리고 그 표현을 아름답게 포장한다고 둘러대다가 우리 모임 이름이 성대 모임이라고 고정된 것이다. 정말 단순 무식하게 지어진 모임 이름인데 어느 누구 하나 싫다는 이가 없다.


성대 모임은 지금 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벌써 12년이 넘은 것 같다. 그사이에 몇몇은 결혼과 이직 그리고 임신과 출산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삼삼오오 모임을 갖는다. 밖에서 못 모이면 집에서 보이기도 하고 요즘은 모임 횟수가 줄어서 아쉽지만 카톡방은 언제나 열려 있다.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고 안부는 묻는다. 결혼하신 분들이 있어도 우리와 금세 친해져서 함께 놀러가기도 하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들의 신랑을 형부라고 부른다.


한 명 한 명 보면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하나같이 공통된 점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다 같이 모아놓으면 두 명은 허당, 두 명은 바보 두 명은 그나마 똑순이 나머지 한 명은 병풍... 어디에 어떻게 있느냐에 따라서 캐릭터가 달라진다. 계곡, 바닷가, 스키장, 해외여행까지 다양하게 다녔다. 우리 모임은 회사에서 몇 볼 수 없는 희한한 조합의 사람들, 직장에서 이처럼 오랫동안 지속되는 모임을 갖기는 참 힘든 일이다.

그저 회사 동료든, 선후배든, 모두들 비즈니스 관계 그 이상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이 모임의 일원으로 좋은 날과 슬픈 날을 함께 하고 있다. 외롭지 않게, 혼자이지 않게 살아간다는 건 아직까지는 내가 잘 살아오고 있다는 증거이다. 얼마 전 제주도에 혼자 여행을 갔었는데 성대 모임에 최 언니네 가족도 제주도를 온다는 것이다. 서로 거리상 너무 멀리 일정이 잡혀 있어서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공항에서의 짧은 만남 짧은 대화였지만 반가웠다. 다음엔 에버랜드 가자고 약속하며 각자 비행기를 탔다.


내가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전하는 그날까지 모임은 계속되지 않을까? 내심 바래본다. 또 다른 곳에서 한두 명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그때는 제대로 모여서 예전처럼 거하게 수다 한판 떨고 싶다. 모두들 아직 수다와 술 체력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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