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류시화는 썼습니다. “자기만의 사유 공간에서 긴 호흡을 들이미고 내쉴 수 있는 곳이 있는가? 삶이 의미를 잃은 것 같을 때마다 당신을 부르는 곳이 있는가?”
작가는 그런 곳이 라틴어로 ‘피난처, 휴식처’라는 의미의 레푸기움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기를 멈추고 오로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요즘 ‘지나친 소란’에 지쳐버렸습니다. 고갈되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지난 주말, 가평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무언가에 흔들릴 때마다 찾아와 아무 말 없이 거니는 곳, ‘필그림 하우스’에 가기 위함입니다. 맞습니다. 저의 레푸기움 중 한 곳입니다.
외딴 곳에서 하룻밤을 청하면서 세상의 요구와 내면의 욕구로부터 잠시 쉼을 얻습니다. 그곳의 하늘은 더욱 창연했고, 공기는 도시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구름을 보며 새소리를 듣고, 생명력 있는 나무를 만지며 세상과의 논쟁에 빼앗겼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걷다가 벤치에 앉고, 산책하다 숙소에 들어와 뒹굴었습니다. 어떠한 활자도 읽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산등성이 사이 피어오르는 안개와 벌레를 문 채 조명탑에 앉아있는 산새, 그리고 밟을 때마다 알갱이가 터져 나오는 듯한 흙내음에 집중했습니다. 제 자신이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가 살아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의 스토리를 재현해 놓은 길을 묵묵히 따라 걷다가 북카페 ‘미궁(美宮)’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결국 오랫동안 머물고 말았는데, 말 그대로 미궁(迷宮)에 빠진 탓이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자락을 보며 안식했고 평온했습니다.
이곳에서 스쳐간 사람들은 제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눈치 챌 겁니다. 요란한 세상의 소리에서 벗어나 내면의 속삭임을 들으려 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이곳에 왔듯이 필요에 의해 떠날 것임을.
이따금 고단한 영혼을 쉬어 갈 수 있는 레푸기움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되기를 멈추고 오로지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그곳을 저는 아끼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