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이 좋아졌습니다

생각보다 자주 산책을 하는 중입니다.

by 윤목

"우리 밥 먹고 산책하러 갈까?"


밥을 먹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에 한 숟갈 한 숟갈 밥을 떠먹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해졌다.


"응! 그러자!"


밥을 실컷 먹고 집을 나서는 우리는 여느 날과 같이 강남대로를 한 바퀴 돌기 위해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코로나 때문에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이면 강남대로는 늘 한산하다. 간간히 걸어 다니는 동네 주민들의 모습. 횡단보도 아래 주욱 늘어선 비어 있는 택시들과 가로등과 전광판 만이 빛나고 있는 고요한 강남대로의 모습은 그야말로 산책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산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밥을 먹으면 눕는 것이 버릇이었던 사람이었고 문 밖에 나가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산책을 먼저 가자고 이야기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만난 것은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시기였다. 부득이하게 데이트를 밖에서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었었고 데이트의 장소는 집으로 국한되었다. 나와는 반대로 산책을 좋아하는 그녀가 초반에 만났을 때 나에게 산책은 꼭 같이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꼭'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부탁한 것인 만큼 함께 하고 싶었다.


"산책 가고 싶지?"


식사를 마친 그녀가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 보여 살짝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표정이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응... 소화가 잘 안돼”


밥 먹고 걷는 것으로 소화시키던 사람이 밥 먹고 앉아있거나 누워있으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밖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섣불리 산책 가자고 말하기 힘들어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제안을 했다 소화가 될 것 같지 않으면 꼭 산책을 함께 하자고 말을 해달라고. 역시나 그녀가 혹여 내가 싫어하면 어쩌냐며 반문했다. 찰나의 순간 고민했다. 싫어하지 않을 거라 호언장담 할 수는 없었다. 워낙 밖을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우린 솔직하게 서로 이야기를 하기로 했으니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반문에 대답했다. 내가 산책하는 날이 싫을 수도 있지만 그런 날이 있으면 말하거나 조금만 걷자고 하겠다고.


처음 한 달간의 산책은 조금 나에겐 버거웠던 산책이었다. 자전거를 타는 격한 운동을 제아무리 내가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버거움의 포인트는 결코 운동의 강도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천천히 몸에 별 무리 없는 활동을 지속하는데에서 오는 버거움이었다. 그러나 산책의 점점 커가는 산책의 묘미가 있었다. 걸으며 서로 이야기하는 소중한 시간. 집에서 함께 있을 때면 어쩌면 하지 않았을 그런 이야기들이 서로의 입에서 귀로 전달되었다. 아! 홀로 하는 산책은 절대 하지 않았으리라. 대화의 낙(樂)을 알아 버렸다.


"나 오늘은 조금만 걷고 싶어"


간혹 산책하기 귀찮거나 힘든 날. 혹은 몸의 컨디션이 별로인 날이면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제안하곤 했다. 물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날이 많지는 않았다. 티를 내려하지 않아도 티가 나는 사람이다 보니 대개는 그녀가 먼저 조금만 걷거나 아얘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해 주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날이면 평소의 절반 되는 거리 정도를 거닐을 뿐이었다. 그에 따라 우리의 대화의 시간도 반으로 줄어들었겠지만. 함께할 시간이 더 많을 것이라 확신한 탓인지. 조급하게 대화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함께 할 시간이 많을 거라는 자신감은 평소에도 서로 대화를 많이 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정도면 그래도 많이 걸은 거 아니야?"


조금만 걷자고 한날. 나는 늘 이렇게 물었다. 아니 물은 게 아니라 정해진 답을 달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건넸다. 그럴 때면 크게 웃으면서 많이 걸었다며 맞장구 쳐주는 그녀의 너스레에 나는 나름의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나는 산책을 했다. 적은 거리지만 이 정도면 그녀에게도 만족해 달라고 외치는 소리였다.


'오늘은 산책을 같이 나가고 싶은 날인데...'


함께 있는 시간이 많기는 하지만.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나였다. 한두 번 같이 나가던 산책이 나에게 습관으로 다가오자 저녁 시간 즈음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었다. 적당히 배불리 밥을 먹고 둘이 손잡고 산책을 가고 싶다는 마음. 너무 늦지도, 짧지도 않은 밤의 시간에 사람 없는 거리를 거닐며 우리의 이야기로 강남대로를 채워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그녀를 꼬드겼다. 나 오늘 산책하고 싶은 날이야. 나랑 산책 갈까 라고.


누군가의 취향을 소개받고 함께 하는 것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비록 그녀는 건강을 위해서이고 나는 함께 고요함을 걸어 다니는 그 시간 자체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꼭 건강을 위해서는 아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미 나는 함께 산책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나는 그렇게 산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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