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에 대해
아주 간혹 그리 잦은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것이 연애든, 커리어든, 관계든 간에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는 이유는 기존에 하던 것이 잘 되지 않아서. 혹은 보다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그 이유가 된다. 누구에게나 새롭게 시작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어쩌면 '첫'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어렵지 않을까. 더구나 첫 시작이라면 말이다.
"나 이제 영상일 그만하고 싶어"
본격적으로 영상 쪽에 일을 한 지 3년에서 4년쯤 되는 어느 날. 힘겹게 이야기를 꺼냈다. 해본 사람이 알고 있을지. 아니면 나만 그리 힘들었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늘 잘하고 있는 사람이고 싶어 견디고 견디고 견디려 했지만 더는 말도 안 되는 광고주의 니즈를 더 이상 맞출 생각도 없었고. 회사를 운영하며 알게 모르게 쌓여온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 따위에 그만 지치고 싶었다. 조금 더 솔직함을 얹어볼까. 수익이 많았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함께 하던 이들과의 불화와 퇴직 그리고 알게 모르게 일어났던 배상적 사고들과 광고주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컴플레인들에 나는 힘들었다. 그래서 그만하고 싶었다. 지난 몇 년간 수없이 생각을 했지만, 미련하게 붙잡아오던 것을. 더는 견디며 살리라 다짐하지 않은 지금 가장 의자가 되고 의견을 묻고 싶은 이에게 말했다.
"독서 논술을 가르치고 싶어"
그동안 해오던 일에 대해 끝맺음을 고할 때 보다 조심스러웠다. 혹여나 내가 너무 가벼이 말은 한 것은 아닐까 해서였다. 학창 시절 몇 번 과외를 해본 것이 다면서 십 년 여가 지난 지금에 와서 갑자기 독서와 논술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면. 객관적 진입장벽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그녀가 해온 일에 대한 존중 자체를 하지 않는다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조심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비록 해보겠다고 말한 것은 나였지만. 그 길을 먼저 제안해 준 것은 그녀였을 지라도 나는 손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분명 알량한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를 너무 몰랐을지도.
"충분히 잘할 것 같아"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힘듦이라는 것이 모두 녹아내렸다. 그간 마음속 어딘가에 숨겨져 도무지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한 욕망이 샘솟는 듯했다.
일을 하던 업종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는 알고 있었다. 32살에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는 것. 그 이유가 단지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라면 너무나도 빈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를 믿기로 했다. 그래야 나에게 힘을 준 그녀도 나를 믿을 수 있을 테니. 그래서 열심히 준비해 보기로 했다. 그간 읽지 않았던 중학교, 고등학교에 필요한 책들의 리스트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온라인상에 있는 온갖 커리큘럼들을 찾아보며. 어떠한 가르침이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할지에 대하여 고민도 해 보았다.
제대로 발을 디뎌 시작을 해보지 않은 길. 그러나 앞으로는 차근차근 한걸음 씩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컸다. 늦은 시작을 고한만큼.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어린 시절 내가 받았던 교육의 과정을 되짚어 보았다. 나야 그나마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독서와 논술 그리고 국어에 대해 호감을 가졌으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는 책에 대한 흥미보다는 그저 숙제를 위한 읽은 책의 숫자를 채우는 것에 대한 목적이 더 가까울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 아이가 어떤 책을 읽더라'라는 부모 간의 경쟁 사이에서 알맹이 없는 지식을 갈구했을 일이었다.
영상 일을 하면서도 맞지 않은 방법에 대해 설득하고 타협점을 찾던 나였기에 이번에도 그리 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나친 선행학습은 아니되 부모들의 니즈를 맞출 수 있는 리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흥미를 줄 수업의 방식에 대하여 커리큘럼을 짜 나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벼운 첫 수업으로 초등 독서 논술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스스로의 힘으로 그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늘 내 옆에서 의지가 되어주고 내가 해 낼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그녀가 소개해 주었다. 알맞을 만한 학원을. 그리고 나는 그 쉽지 않았을 그녀의 선택에 기꺼이 감사하고 믿음을 져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철두철미하게 매 수업 매 시간을 준비하고자 했고 그 마음을 이어가는 중이다.
새로운 시작은 설레기도 하지만 두려움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에 갇힐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주는 이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