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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Jul 21. 2022

푸른 것들은 어디 있을까


뜨거운 여름의 볕 아래와 대조되는 시원한 차 안.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들 뒤에서 벌레들의 울음이 들려온다. 온갖 소리들이 겹쳐 들린다. 일정하지 못하기만 한 것 같은 소리들 안에서 일정함이 들리는 듯 하여 마음이 평온해 진다. 잠시 그 평온함을 즐기고 싶지만 가야할 길이 남아있어 하는 수 없이 길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린 찰나의 고요함을 밖의 풀벌레들의 소리가 헤집어 놓는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들어 커다란 통유리창 밖 녹음진 나무의 이파리들을 바라보았다. 수 많은 잎들이 풀벌레 소리에 맞춰 왈츠를 춘다.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여름이 아직 여기에 있다고. 자연이 바로 문 밖에 있다고.


여름이 되면 시원한 건물 안을 향해 잰걸음을 걷는다. 그렇게 들어선 건물 안. 우리는 열기 하나 없는 밝은 빛에 시야를 맡기고 자그마한 구멍에서 나오는 바람에 숨을 맡긴다. 몸의 감각이 인위적인 것들에 젖어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편안함에 이른다. 바깥이 여름이었음을 망각한 상태로.


창 밖에서 흔들어 대던 나뭇잎의 인사가 반가웠다. 나오면 자연을 만끽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문 밖을 나서자 마자 헛된 꿈이었음을 깨닫는다. 5층짜리 건물과 4층짜리 건물 사이의 비좁은 시멘트 화단에 자리잡고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상상하던 나무가 아니었다. 포근하게 품어 줄 것 같은 자연이 아니었다.


나는 건물과 건물들 사이에 있는, 인도와 도로에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는 것들을 자연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자연이라기엔 형체만 자연일 뿐 아스팔트와 시멘트의 구멍에 메운 흙에 얹어진 인위적인 것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슬펐다. 기대하던 자연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싶어졌다.


그나마 자연에 가까운 것들 이라고는 북서울 꿈의 숲, 서울숲, 청계산, 선정릉 정도. 나열하고 보니 자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청계산 정도다. 어쩌면 나는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식물들이 살고 있는 땅의 넓이인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 본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언어에 각자의 기준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 자연은 넓은 땅에 다양한 개체가 존재하는 곳이다.


누워서 푸른 하늘을 한없이 바라 볼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뒹굴 수도 있어야 한다. 간혹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수도 있어야 한다. 들숨을 들이마쉴 때 매연의 내음보다 풀과 나무의 내음의 농도가 짙어야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사방을 둘러 보았을 때에 회색빛의 시멘트보다 눈이 편안한 푸르른 것들로 채워져 있어야 한다.


어딜가나 회색빛의 도시라서 자연은 이곳에 없다. 간간히 보이는 도로위의, 화단의 식물들은 그저 생명없는 빌딩과 아스팔트 도로들이 생명가득한 자연과 어울려 보이길 바라는 포장이다. 자연은 해치면서 일말의 자연은 살려 놓았다는 합리화이자 시멘트 속 인간들을 위로해 줄 최소한의 자연인 척의 결과물.


아, 자연이 없다. 그저 더우니 여름이고 장마가 지나고 선선하니 가을인 것이며 눈이 오니 겨울이다. 푸른 것들은 이 곳 어디에서 만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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