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미쳤다. 이 말을 제외 하고는 그 어떤 말로도 오늘의 날씨를 설명할 수 없다. 밖에서 흉흉한 바람이 불어대는 소리는 나를 집에만 가두는 족쇄가 되고자 하는 듯 하다. 창을 열어 보았다. 한 순간에 피리처럼 얇은 소리를 내던 바람은 거센 파도가 되어 창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바람의 거셈을 확인하자 잠자코 문을 닫았다. 강아지 산책을 해야 하건만. 의지는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듯 흔적도 없었다.
갑자기 찾아오는 것들은 그에 대한 부수적인 기억들과 함께 찾아온다. 뜻 밖의 추위는 박하사탕 목걸이처럼 여럿 기억들을 엮어 놓았다. 차가움, 깨질 듯한 손, 군밤, 군고구마, 붕어빵, 난로. 엮여있던 수 가지의 단어들이 떠오른다. 차가운 것들과 따뜻한 것들 그리고 추위에 엮여있던 것들이 지니고 있던 각각의 향기들. 그것들은 내가 겨울에 대한 기억을 상기할 수 있도록 도왔고 내가 끝없는 겨울의 향수들을 좇게 만들었다. 얼굴이 밝아진다. 가슴 한 켠이 두근대며 빠르게 펌프질을 시작한다. 신논현역 사거리에 놓여진 한 평 안밖의 가게를 떠올린다. 작년에 찾았던 그 곳. 결국 나는 추위를 이겨낼 자신감을 찾았다. 체감하지 못한 추위를 얕본 채. 기억에 의존한 자신감으로 몸을 기꺼이 내던질 준비를 마쳤다. 살아있는 것 같은 붕어빵을 위하여.
이성을 아직 다 잃진 않았다. 추운 날이라는 것만은 본능에서 멀어지지 않았는지 옷을 단디 챙긴다. 카키색 패딩을 꺼냈다. 마스크를 쓰고 벙거지 모자를 썼다. 카키색의 패딩에 블랙 벙거지라니 33살의 나이가 무색하게 요즘 아이들의 힙함과 맞닿아 있음이 느껴진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지나가던 이들이 젊어보이려 노력한다고 비웃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은근 앞섰다. 옷은 예쁘지만 내가 예쁘지 않음 걱정이었다. 이미 이런 걱정이 시작 되었으니 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몇몇의 시선을 오해할 것이 분명해진다. 그러다 이내 ‘패션은 돌고 도는 것’ 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잊고 있었던 문구였다. 여전하다 나도 참. 여전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고 있었다.
씻지 않고 나선 얼굴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면도하지 않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는 더욱 더 꼼꼼하게 체크를 했다. 그렇게 무장을 하고 문을 나섰다. 아직 차리지 못한 정신을 차리라는 것 같다. 날카롭고도 거센 바람이 나의 뺨을 후려친다. 왼뺨, 오른뺨, 이마, 코 가리지 않는다. 하마터면 주저 앉을 뻔했다. 너무 거세다. 기껏 나온 나의 발걸음이 집을 향해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붕어빵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수산시장의 것들과 너무나도 비슷한. 비록 피가 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몸뚱이. 영혼이라고는 머금어 본 적이 없는 눈동자. 팥 앙금인지 슈크림인지 모를 것을 한껏 머금고 있을 앙다문 입술. 나는 그것들을 위해 길을 나섰음을 되새기며 한 걸음을 옮겼다.
사거리 신호등에 선다. 새로운 갈등이 시작된다. 조금 따스한 지하도로 갈 것인가 아니면 춥더라도 지상의 횡단보도를 지나 갈 것인가. 점심시간 무렵인지 지하철을 향해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죄다 패딩을 두른 채로. 횡단보도 앞에는 사람이 없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섰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나는게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무언가 딱히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길을 묵묵히 잰걸음 혹은 빠른 걸음으로 걸을 뿐이다. 내가 사람이 없는 시간을 골라 움직이려 드는 것도, 낮 보다 밤을, 좁은 곳 보다 넓은 곳을 좋아하는 원인은 모두 같았다. 때로는 땅덩어리가 생각보다 넓어서 사람들이 없는 곳이 있음에, 움직이는 시간대가 달라 사람들을 마주하지 않음에 감사할 정도였다. 추위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추위는 움츠리면 그만이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걸으면 해결 될 일이었다. 홀로 횡단보도에 덩그라니 남겨져 있는지 오래지 않아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나는 건너편을 향해 걸었고 건너편에선 또 다시 세찬 바람이 건너오며 나를 세차게 때렸다. 당당하 들어보려던 고개는 다시 고꾸라졌다.
그렇게 두 번의 횡단보도를 건너 붕어빵 가게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었다. 구워지고 있는 붕어빵들은 없었다. 이미 구어진 채로 싸늘하게 식어버린 듯 했다. 생명 없는 것들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자리를 비운 채 그들을 죽음으로 등 떠민 주인이 원망스럽다. 그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잠시 뿐이었다.
연민의 감정을 빠르게 빠져나가고 거리감을 두고 싶은 마음이 자리를 잡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자리에 돌아온 그 무심한 주인장은 나에게 이미 식어버리고 있던 죽어버린 붕어빵을 건넬것이 분명했다. 붕어빵 주인이 오기 전에 누군가가 내 뒤에 붕어빵을 사러 온다면 나는 충분히 자리를 비켜줄 용의가 있음을 생각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셋 이상의 사람들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깨닫고 주변을 살핀다. 아무도 없다. 그 차가운 것들의 주인은 나 빼고는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봐도 붕어빵 가게의 주인일 것 같은 어르신이 온다. 어기적 거리는 발걸음. 손에는 면으로 된 장갑을 낀 채로였다. 그 장갑을 낀 손으로 나에게 붕어빵을 건넬 것이 분명하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인 척 집으로 돌아가는 선택지를 고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전에 저녁 산책을 하다가 거리의 하수구에 기름을 버리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 개에 이천 원 하는 붕어빵을 위하여 건너온 횡단보도 두 개가 아깝다. 추운 바람을 이겨낸 길들이 아깝다. 나는 그의 장갑이 깨끗할 것이라 믿기로 했다.
육천 원 어치의 붕어빵을 주문했다. 순간 가게 한 켠의 일회용 비닐 장갑이 눈에 보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외쳤다. “사장님 비닐 장갑 끼고 주세요.” 잠시 당황하더니 비닐 장갑을 꼈다. “아이구, 깜빡할 뻔 했네.” 넉살 좋게 웃으며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한다.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말. 멋쩍음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다른 이들에겐 저 면장갑으로 식어버린 것들을 건넸겠지. 안봐도 뻔했다. 붕어빵을 건네받은 나는 재빠르게 가게를 벗어났다. 식어버린 것들이 차가워지기 전에 품에 넣고 달리는 속도 못지 않은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직 차갑진 않았다. 붕어빵을 위하여 겪었던 것들이 의미있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