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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Mar 23. 2024

아이들의 싸움

방글라데시 아이와 한국 아이

봄온도가 느껴지는 3월 토요일 세종대학교 운동장에 갔다. 열댓 명 초등학생들이 미니 축구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홍일점 키 큰 여자애가 공을 찼는데 어떤 안경 쓴 남자애 얼굴을 맞췄다. 얼굴이 울상이 돼서 우는 남자애게로 친구들이 달려갔다. 잠시 후 괜찮다며 다시 축구를 했다. 물고기 때처럼 우르르르 몰려다니며 축구를 하는 모습이 나름 재밌어 보였다.


그때 얼굴 피부가 유독 까맣고 눈이 커다란 아이가 빨간색 자전거를 타고 등장했다. 인도나 파키스탄 어린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어린이 무리에 껴서 놀 생각인 거 같았다. 나는 철봉운동을 하면서 틈틈이 그들의 축구경기를 구경했다.




“미친 새끼야!”


운동을 하는데 멀리서 인도 어린이와 한국 어린이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신기하게도 인도 어린이의 입에서 미친 새끼라는 찰진 욕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둘은 서로의 잘못을 비난하며 옥신각신 싸움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중재를 하러 가야 하나?’


싸움이 커지자 축구무리가 싸움판에 끼어들었다. 인도 어린이는 계속 욕을 하며 물어내라고 소리쳤다. 아무래도 한국 어린이가 인도 친구의 자전거를 망가트린 모양이다. 둘은 계속 욕을 하고 절대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급기야 속사포 같은 주먹들이 서로의 얼굴을 강타했다. 인도 아이의 타격 펀치는 한국 아이의 얼굴에 선명한 핏자국들을 만들었다. 그러자 다른 한국 아이들이 중재를 나섰는데 편파적으로 인도 아이를 몰아세웠다.


정의의 아저씨가 등장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애들에게 다가갔는데, 우선 키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어른이 등장하면 애들이 기가 죽을 법한 대도 나는 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아, 나는 왜 키가 작을까?’


오히려 소외감이 들고 전혀 중재를 하지 못했다. 거친 말투로 고함을 치며 솔로몬의 판결을 내리는 여러 아이들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한 무리는 진흙탕 싸움처럼 지지부진 질퍽거리며 사건을 질질 끌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한국 아이가 허락 없이 인도 아이의 자전거를 탔고 자전거 열쇠고리를 망가트렸다. 격노한 인도 아이는 한국 아이의 지갑을 빼앗아 돈을 받아내려다 주먹다짐을 한 것이었다. 하얗고 앳된 한국 아이는 절규하며 분노가 치달았고 여러 아이들이 그 애를 달래려 애썼다. 덩그러니 혼자 서있는 인도 아이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너 어느 나라 사람이니?”

“방글라데시요.”


한국말을 아주 잘한다. 인도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틀렸다. 이젠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걸 알았다.


“저 친구가 네 자전거 망가트린건 분명 잘못한 건데, 네가 쟤 얼굴을 저렇게 때린 건 더 잘못한 거야. 쟤 병원 가면 네가 몇 백만 원 물어줄 수도 있어? 경찰 부를까?”


여전히 자기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인정을 하지 않았지만, 몇 번을 더 설명하니 자기가 불리한 상황인 걸 알게 된 것 같았다.


“이름이 뭐니?”

“에틴이요.”

“그래 에틴아, 아저씨랑 약속 하나만 하자. 앞으로 절대로 사람한테 주먹질하지 마. 너 정말 큰일 난다. 쟤 안경 썼는데 눈 다쳤으면 어떻게 했겠니? 진짜 너 감옥 갈 수도 있어. 네 부모님들도 힘들어지실 거야? 알겠지? 절대 안 된다!”


에틴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리고 교회에 가봤는지 물어보고 예수님에 대해 말해주니 자기 가족은 이슬람이라서 교회를 못 간다고 한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생활이 얼마나 힘들까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에틴을 위로해 주고 안아주었다. 에틴은 그제야 내 눈을 바로 보고 내 이야기를 들었다. 에틴은 자기편이 아무도 없는데 내가 함께 있어주니까 안도에 눈물을 흘리며 훌쩍였다. 




주먹다짐을 한 두 어린이는 극적으로 화해했다. 그 무리 중에 가장 어른스러운 친구에게 말했다. 


"아저씨가 보기에 네가 여기서 제일 어른스러운 것 같아서 말하는데 에틴은 외국인이야. 얼마나 힘들겠니?

약한 사람을 잘 돌봐줘야 멋진 남자 아닐까?"


그 친구도 인종차별은 나쁜 거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그 어른스러운 친구가 에틴에게 다가가 포옹을 한다. 나는 편의점으로 갔다.


‘20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천 원짜리 음료수 하나씩만 사줘도 2만 원이겠구나.’


편의점에 가니 4,000원에 2+1 우유가 있었다. 초코, 딸기, 바나나 우유 12개를 사고 1,200원 베스킨라빈스 우유 8개를 샀다. 에틴, 다친 한국 친구, 어른스러운 친구에게만 줄 초콜릿도 샀다. 3만 원 가까운 돈이 나왔다. 다시 축구장에 가니 또다시 에틴은 홀로 덩그러니 서있었다.


“왜 혼자 있어?”

“교체 대기 선수예요.”


에틴 옆에 서서 잠시 기도를 하고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음료수 먹고 해라!”


내 손에 들려있는 묵직한 비닐봉지를 보자 아이들은 일제히 나에게 달려들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종류의 우유를 주면서 말했다.


“에틴 잘 돌봐주고, 예수님 믿고 천국 가야 된다.”


 아이들 모두 씩씩하게 알겠다며 우유를 받아갔다. 유난히 덩치 큰 아이에게는 우유 하나를 더 줬고 얻어터진 한국 아이에게도 초코바와 우유를 하나 더 줬다. 아이들이 금세 먹고 남은 빈 우유팩은 나에게 달라고 했다. 





작은 우유 하나와 나의 말이 그 아이들의 인생에 얼마나 그리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소외감에 얼어붙은 에틴의 마음이 봄바람처럼 포근해지면 좋겠다. 다른 아이들의 마음도 달콤한 초콜릿우유처럼 부드러워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예수님 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유 하나와 초코바 하나가 남아서 나도 먹었다. 달콤한 민트초콜릿 우유를 마시며 고개를 들어 하늘색 하늘을 보니 나무에는 꽃들이 피어있었고 꽃들 사이에 나비도 있었고 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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