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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Mar 28. 2024

단편소설 나랏말싸미

제1화 : 고미술상점에서 일하는 남자

아침에 버스를 타려고 버스정류장에 갔다. 버스전광판을 보는데 버스번호 옆에 3분, 5분 이런 글자가 아니라 노란색으로 '차고지'라는 낯선 단어들이 보였다.

'전광판이 고장 났나?'


문득 버스 파업 생각이 났다.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없었던 이유였다. 

그런데 승강장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안 다녀요. 파업했어요."


남자에게 말하고 지하철을 탈까 하다가 직장에 지각을 할 거 같아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여기 승강장의 버스들은 노선들이 비슷해서 남자와 같은 방향일 것 같았다. 


"어디까지 가세요?"

"답십리역입니다."

"저도 그쪽 방향이니까 같이 택시 타고 가시죠."


그때 빨간불빛 빈차가 표시된 택시 한 대가 다가왔다. 내가 택시를 잡고 먼저 안쪽에 탔다. 그리고 남자가 탔다. 남자가 들고 있는 가방이 고급스러워 보였다. 택시가 출발하자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스몰토크를 건넸다.


"직장이 답십리역에 있으세요?"

"네, 답십리역 고미술상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 맞아요. 답십리역에 골동품가게가 아주 많은 걸 알아요. 거기서 일하시는군요. 전문 분야가 어떻게 되세요?"

"아.... 저는 고서적 분야입니다."
"아, 그렇군요. 한자 많이 아시겠네요."

"아, 네 직업이다 보니까...."


나는 궁금했던 걸 물어보고 싶었는데 남자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긴장된 얼굴로 가방 손잡이를 힘껏 잡고 있었다. 


'뭐야? 가방 안에 꿀단지라도 들었나?'


 갑자기 택시가 끼-익 소리를 내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몸이 앞으로 세게 쏠린 채 앞을 보니 택시 앞으로 검은색 밴 한 대가 추월해서 정차를 한 것이었다. 평소에 언제나 어디서나 안전벨트를 매는 습관이 있어서 택시를 타자마자 안전벨트를 맨 나는 급제동에도 괜찮았지만, 옆에 있던 남자는 쿵 소리와 함께 앞으로 튕겨져 조수석 뒷부분에 몸이 세게 부딪혔다. 남자 무릎에 올려놓았던 서류가방도 뒤집어져 가방 안에 있던 서류들과 옛날 책 같은 서적들이 택시 바닥에 쏟아졌다.  


"괜찮으세요....?" 


남자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남자는 피를 흘리고 기절을 한 것 같았다. 사람이 피를 흘리고 기절해 있으니 순간 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다행히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사님, 먼저 병원으로 가시죠!"


그런데 택시 운전사가 창문을 열고 앞 차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당신들 뭐야!" 


 검정밴에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체구가 큰 남자들이 택시로 달려왔다. 남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택시 문을 열고 기절한 남자를 끌어냈다. 남자들 모두 목과 팔목, 주먹에 문신들로 가득했고 살벌한 얼굴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공포가 밀려왔다. 나는 얼어붙어 안전벨트를 붙잡고 어금니를 깨물었는데도 아래턱이 덜덜 떨렸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본능적으로 자는 척을 했다.


'필사적으로 자연스럽게 자는 척 하자!'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든 척을 하고 귀를 쫑긋 세워 택시 내부 상황에 집중했다. 남자가 끌려나가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가방들과 책들을 담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들이 서로 말을 하는데 한국말이 아니었다. 일본말로 하는 것 같았다.

 

'뭐야 일본 사람들이야? 서... 설... 설마? 야쿠자?!!'


극도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런데 곧 택시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검은색 밴이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눈을 뜬 나는 택시운전사에게 말했다.


"하.... 선생님! 저 사람들 뭐예요?"

"모르겠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에이씨! 아침부터 재수 없게! 에이! 몰라! 아저씨도 내리세요!"

"네....? 내리라고요...?"
"아! 내리란 말 못 들었어요? 오늘 기분 잡쳤으니까 운행 안 한다고! 내려!"


택시운전사의 호통에 놀란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주섬주섬 짐들을 챙겨서 택시문을 열었는데 발밑에 무언가 밟히는 것 같았다. 서둘러 밑을 내려다보니 손바닥 만한 책 같은 게 보였다. 크기는 작은데 모양새가 사극에서나 봤을 법한 오래된 책 한 권이 발 밑에 있었다. 


'아! 그 남자 가방에 있던 건가? 어떻게 하지?'


내가 순간 멈춰있으니 번개소리가 귀를 때렸다.


"아! 내리라고!!!! 이 양반아!" 


나는 발밑에 고서적을 챙겨서 서둘러 택시를 내렸다. 내리자마자 택시는 희뿌연 매연을 내뿜으며 눈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내 손에는 낡은 고서적 한 권이 들려있었다. 표지에는 訓民正音 解例本이라고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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