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넓지 않은 흙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마을 사람들이 밭에도 나가고 시장에도 가고 이웃마을로 마실도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흙길에 모난 돌 하나가 튀어나왔습니다. 아마도 지난밤 소나기가 내려서 흙이 파이면서 숨어있던 돌이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습니다.
이른 새벽 서서히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습니다. 일찍 일어나 밭일을 보러 가려던 마을 할아버지가 흙길을 걷다가 모난돌에 발이 부딪혔습니다.
"에구! 악!"
할아버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망치로 맞은 듯한 엄지발가락을 움켜잡고 한참을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땅바닥을 둘러보았지만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서서히 통증이 가신 할아버지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모난 돌이 보였습니다.
"아이! 아침부터 재수 없게! 에이썅!"
할아버지가 뱉은 침은 모난 돌로 정확히 날아갔습니다.
"으악!! 우웩!"
모난 돌이 세상에 처음 나와서 들은 말이 욕이었고 침세례였습니다.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길가 옆에 핀 민들레가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다 길 한가운데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이 보였습니다. 민들레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습니다.
"어? 못 보던 녀석이네? 야! 너 거기 있으면 욕먹어! 얼른 딴 데로 가!"
땅에 박혀서 숨어있다가 바깥세상에 나와서 두 번째로 들은 말이었습니다.
"아.... 왜요....?"
"거기 사람 다니는 길 한복판이잖아! 어이구 저 멍청이!"
모난돌은 보기보다 몸집이 아주 큰 우량아였습니다. 땅속에는 어마어마한 몸통이 숨어있었지요.
"나는 돌이라서 못 움직이는데요.... 어쩌죠....?"
새벽부터 시끄러운 소리에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하기로 유명한 나팔꽃이 하품을 하며 잠에서 깼습니다.
수다쟁이 민들레가 나팔꽃에게 모난돌을 멍청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못 보던 친구네. 왜 거기 있어?"
그 순간 커다란 원 두 개가 빠르게 달려왔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룰루 랄라!'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고등학생 철우가 자전거를 타고 아침 일찍 학교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자전거 앞바퀴가 그만 모난돌에 부딪혀서 휘청 비틀어지더니 핸들이 꺾이면서 자전거와 함께 철수가 흙길에 파인 물구덩이에 넘어졌습니다.
"으악!"
흙탕물로 교복과 가방과 도시락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철우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모난돌을 발견한 철우는 있는 힘껏 발길질을 했습니다.
"으아아악!"
이번에 더 큰 비명을 지르며 아픈 발가락을 붙잡고 낑낑 댔습니다. 발가락이 부러진 것 같았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거친 숨을 내쉬며 씩씩되던 철우는 모난돌을 매섭게 노려보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하루에 8번 다니는 읍내 가는 첫차가 올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철우는 서둘러 절뚝거리면서 겨우 자전거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았습니다.
"아후! 아침부터 진짜 재수 없게! 아! 짜증 나!!"
모난돌은 철우에게 무척 미안했습니다.
"거봐. 너 거기 있으면 안 된다고 했지? 내가 말했잖아! 왜 내 말을 안 믿어? 너 진짜 거기 있으면 안 돼! 넌 정말 이상한 애야!"
따발총을 쏘는 것처럼 민들레가 쏘아댔습니다.
"진짜 걱정이네.... 이제 마을 사람들이 많이 지나갈 텐데."
나팔꽃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모난돌을 바라보며 걱정해 주었습니다.
민들레 말이 맞았습니다. 시장에 가는 할머니, 학교에 가는 초등학생, 짐을 가득 실은 수레바퀴, 경운기 바퀴, 우체부 아저씨, 아장아장 아기들까지 모두 다 모난돌에 걸리거나 부딪혀서 울고 화내고 짜증을 냈습니다. 모난돌은 미안하고 죄송하고 슬펐습니다. 모두들 자기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몇몇 사람이 모난돌을 뽑으려고 했다가 생각보다 쉽게 뽑히지 않아 두 손을 털고 돌아갔습니다.
몇 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모난 돌을 비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모난돌은 사람들의 외면과 차가운 시선 때문에 언제나 겨울처럼 추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커다랗고 짙은 회색의 구름이 마을을 덮더니 매섭게 바람이 불더니 장대 같은 비가 무섭게 쏟아졌습니다. 오랜만에 태풍 아저씨가 온 것이었습니다.
"으하하하하하하 내가 왔도다!!!"
끼리끼리 논다고 태풍아저씨 친구들도 모두들 무지 세고 강했습니다. 세상이 쩌렁쩌렁 울리는 천둥과 울트라슈퍼파워 번개아저씨, 스모선수보다 더 퉁퉁한 구름부하들을 모두 데려왔습니다. 하늘은 마치 텔레비전에서나 본 디스코텍 같았습니다. 번개아저씨 일당들은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는 듯 신나게 놀았습니다.
"우르르르 쾅쾅쾅"
밤새도록 파티를 한 태풍아저씨와 친구들은 아침이 되자 곯아떨어졌습니다. 햇빛 아가씨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빼꼼 내밀었습니다.
비가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흙길이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흙길이 빗물에 휩쓸려 여기저기 깊은 커다란 물웅덩이들이 생겼습니다. 모난돌도 햇빛을 받아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흙길 위에 모난 돌이 길쭉하게 솟아 나와있었습니다. 마치 커다란 돌덩이처럼 말이죠.
태풍아저씨 무리는 햇빛 아가씨를 보자 부끄러운 듯 헐레벌떡 도망쳐버렸습니다. 제일 일찍 일어나 마을을 살피러 나온 이장 아저씨가 흙길 위에 튀어나온 모난돌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가가보니 무슨 손잡이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이장 아저씨가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힘껏 들어 올렸습니다. 쑤-욱하고 갈치처럼 아주 길다 할고 번쩍이는 것이 모난돌과 함께 딸려 나왔습니다.
엉덩방아를 찧면서 하늘 높이 뽑아 든 갈치는 햇빛을 받아 은빛을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갈치가 아니라 굉장히 큰 칼이었습니다. 어리둥절한 이장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칼을 살폈습니다. 칼날에는 한자가 적혀있었는데 더듬더듬 읽어보았습니다.
"이게 광자인가 황자인가?.... 광..... 개... 토... 대... 왕... 검...? 광개토대왕검??!!"
모난돌은 광개토대왕검이었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위대한 고구려의 왕 광개토대왕의 검이었던 것입니다. 이장 아저씨는 보통 검이 아니란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웃옷을 벗어서 조심스럽게 검을 싸서 얼른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장롱 속 깊은 곳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두었습니다. 보물처럼 말이죠.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풍피해가 없는지 마을을 둘러보러 나갔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말이죠.
마을 사람들은 모난 돌이 있었는지도 기억을 못 하고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싫어했던 모난돌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없어진 모난 돌이 태풍바람에 제 발로 없어진걸로만 생각했었나 봅니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모난돌은 장롱 속에 갇혀있었습니다. 땅속에서 수십 년, 수백 년을 갇혀있었으니 어둠이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고 미워해도 바깥세상이 더 좋았습니다. 밝게 빛나는 아침햇살,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 푸른 풀밭의 향기, 가을의 낙엽과 잠자리, 자비, 개구리, 메뚜기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KBS TV 진품명품 프로그램을 이장 아저씨 마을에서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장 아저씨는 그동안 숨겨왔던 모난돌이었던 검을 보물처럼 싸서 감정을 받으러 갔습니다.
진품명품 감정위원들이 검을 보자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흥분된 얼굴이 역력히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장아저씨와 마을사람들 모두 가슴이 콩닥콩탁 뛰면서 객석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사회자는 분위기를 더 고조시 키기면서 말했습니다.
"아! 지금 보니까 엄청난 물건이 나온 것 같은데요. 저도 몇 년 동안 프로그램 사회를 봤지만 심사위원님들이 이렇게 흥분하시는 건 처음 보는데요.....! 잠시 기다려주시죠! 채널 고정! KBS 진품명품!!"
4명의 심사위원들이 상기된 얼굴로 의견을 나누고 감정가를 담당 PD와 사회자에게 전달했다. 감정가를 본 PD와 사회자가 두 눈이 동글해져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입이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아!! 여러분! 지금 엄청난 감정가가 나왔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모습을 지켜보던 이장 아저씨는 손에 땀이 나서 흥건해졌습니다. 가슴이 벌렁거려 터질 것만 같았죠.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조차 힘들어서 다리를 덜덜 떨었습니다.
"최종 감정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종 감정가는!!!!!!"
온 마을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이 흘렀습니다.
"최종 감정가는!!!"
"천......."
이장 아저씨가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천....."
"천 원입니다!"
"최종감정가는 천 원입니다."
사회자가 앙증맞은 얼굴을 하면서 최종감정가를 말하자 심사위원들도 폭소를 터뜨리고 마을사람들도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장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허탈해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마음속으로 간절히 별 볼 일 없는 물건이길 바랐던 몇몇 마을 사람들은 통쾌했습니다. 힐끔힐끔 이장아저씨를 쳐다보며 키득 키득댔습니다. 그렇게 배꼽을 잡고 웃고 있는데 갑자기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여러분! 분위기를 위해서 제가 조크를 해보았습니다! 다시 감정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종 감정가는 천! 억!입니다!"
"천! 원! 이 아니라 천! 억!입니다!"
순간 이장 아저씨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할렐루야!!!!"
이장 아저씨의 부인도 그제야 벌떡 일어나서 두 손을 들고 외쳤습니다.
"할렐루야!!!!"
두 사람은 얼싸않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토끼처럼 두 눈이 동글해져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럼 감정평가위원님 나오셔서 설명 있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중요문화재 감정평가위원 김감정입니다. 감정결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검은 여러분 보시다시피 칼날에 광개토대왕검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누구나 아시는 유명한 왕이시죠.
이 검을 자세히 보면 우리나라 형태가 아니라 중국의 검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작은 글자로 어려운 한자들이 적혀있습니다. 내용은 중국이 고구려왕인 광개토대왕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나라를 지켜주길 바라는 화친 조약체결을 간청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현재 만주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할 때 중국에서 광개토대왕을 황제라고 칭하며 선물했던 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검은 중국과 역사분쟁이 있는 현시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주장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우리 민족에서 가장 귀중한 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가는 천억이지만 실제로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한반도를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보물입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드러낼 수 있는 역사적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 평가를 50년 넘게 해 오면서 이렇게 위대한 유물을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방송이 나가자 이장 아저씨는 별안간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 역사적 가치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국무총리와 문화체육부 장관이 직접 마을을 방문해서 국가에게 소유권을 이전해 주길 부탁했습니다. 감정가만큼은 아니지만 엄청난 금액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장 아저씨와 아줌마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검을 본인들이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도 어렵고 너무 욕심부리면 화를 당한다는 생각에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최종 협상 금액은 265억이었습니다.
모난돌은 국립중앙박물관 메인 전시실의 내진설계된 초고강도 특수 전시실에서 전시되었습니다. 보물 중에도 가장 중요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모난 돌의 등장으로 중국은 더 이상 대한민국을 속국이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고 동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이 우뚝 설 수 있게 하는 역사적 증거가 되어주었습니다.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고 자랑하는 유물로 역사책의 표지 모델도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바람 아저씨가 민들레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거봐! 내가 말했잖아! 보통 모난 돌이 아니라고! 크게 될 녀석 같았어!"
나팔꽃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치...."
민들레는 나팔꽃을 째려봤습니다. 민들레와 나팔꽃은 동시에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부럽다....."
사람들이 모두 미워했던 모난돌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고 좋아하는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