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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청춘, 그리고 우리

나의 까칠이

by 태리우스

나는 춘천에 있는 대학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우리 과는 문화예술대학에 있었다. 드넓은 캠퍼스에서도 지대가 높은 언덕 위였다. 학교정문에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예술대학이 나왔다. 4층 건물이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공실 층수도 올라갔다. 드디어 4학년이 됐을 때 문화예술대학에서 뷰가 제일 좋은 전공실을 갖게 되었다. 창문을 넘어가면 커다란 테라스공간이 있었다. 그 테라스는 오로지 공업디자인 4학년 학생들만이 독점하는 테라스였다.


반대로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테라스가 하나 더 있었다. 문화예술대 학생들의 쉼터 같은 장소였다. 그 테라스도 뷰가 훌륭했다. 잠깐 춘천을 소개하자면 춘천은 평평한 분지다. 소양강이 흐르고 호수가 있는 호반의 도시, 안개의 도시이기 때문에 공장을 세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춘천은 산업도시가 될 수 없어 발전이 더디다. 그래서인지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다. 춘천을 채우고 있는 건물들은 바닷가 해변에 조약돌들처럼 작은 키로 펼쳐져 있었다. 춘천이란 이름처럼 언제나 봄햇볕이 캠퍼스를 보듬어줬다.


예술대학은 밤샘 작업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예술가적인 본능이 있어서일까? 야행성 친구들도 많지만 그것보단 과제가 많다. 대부분 과목에서 디자인 작품을 만들어야 했는데, 작품 만드는 시간이 여간 오래 걸리는 게 아니었다. 야작시간에 바람을 쐬러 테라스에 나가면 밤바다처럼 어둠이 내려앉은 춘천에 희미한 불빛들이 반딧불처럼 빛났고 캠퍼스 안의 숲 속을 바람들이 지나가며 잎사귀의 파도소리를 냈다. 별빛이 음표가 되어 귀뚜라미들이 노래를 불렀고 저 멀리 음악과 학생들이 피아노와 성악으로 배경음악을 깔아줬다. 야외음악회에 온 듯 옥상 난간에 기대서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한참을 춘천의 밤을 보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테라스에 나갔는데, 건물 난간 펜스 너머에 사람이 앉아있었다. 여자 후배 하나가 난간을 넘어서 건물 외벽에 걸터앉아 있었다. 건물 외벽디자인이 부분적으로 튀어나와 있었는데 거기를 슬금슬금 걸어가 벼랑 끝 바위처럼 앉아있었다. 자기가 무슨 게임케릭터마냥 목숨이 여러 개 붙어 있는 줄 아는 건지? 어쩌자고 건물옥상 난간을 넘어서 거기를 앉아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애의 별명은 까칠이였다. 디자인학과 사무실에서 조교샘을 도와주는 근로학생이었는데, 성격이 까칠해서 까칠이였다. 한여름에 바닷가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초등학생처럼 얼굴이 까만 피부였다. 연예인처럼 화려하게 예쁘지는 않았지만 눈이 크고 예쁘장하게 생겼었다. 엉덩이가 커서 실루엣이 곰돌이 푸를 닮았는데 몸매까지 날씬했으면 인기가 많았을 아이였다. 콧대가 높아서인지 학교 다니면서 연애는 하지 않았다. 학교 생활도 야무지게 해서 평균학점 4점을 넘었었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친구였다. 인서울을 아쉽게 놓치고 지방국립대에 온 케이스 같았다.


그 애가 벼랑 끝에 앉아서 캠퍼스를 바닷가 바라보듯 유람하고 있었다.

"까칠아! 큰 일 날라고 그래! 빨리 일로와!"

나와 친구들이 놀라서 까칠이를 불렀다. 까칠이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겁쟁이 같은 우리를 비웃듯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가 뭐라고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거기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그 난간 너머 절벽에 걸터앉아 있던 모습이 아직도 내 마음에 담겨있다. 까칠이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한발 한발 디디며 난간 쪽으로 다가왔다. 한 발자국이라도 헛디디면,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뼈도 못 추릴 만큼 위험한 높이였다. 까칠이가 난간을 넘어오며 우릴 보면서 말했다.

"저기는 여기랑 비교도 안돼."

펜스에 기대서 바라보는 밤하늘과 펜스 너머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당연히 자기 목숨 걸고 보는 구경이니까 목숨값 하겠지. 가끔 뉴스에서 초고층빌딩에 몰래 올라가 셀카를 찍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들처럼 까칠이는 거기에 앉아 쾌감을 느꼈던 걸까? 까칠이는 왜 목숨을 걸고 그런 위험한 행동을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까칠이는 다른 후배들보다 내겐 더 특별했다. 왜였을까? 군대를 갔다 와서 복학신청을 하러 학과 사무실에 갔을 때 처음 본 애가 까칠이였다. 학과사무실 문을 열자 놀란 듯 날 바라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복학생인데요. 궁금한 게 있어서요."

'새로 복학한 선배인가 보다.' 이런 생각으로 날 봤겠지. 2학년 1학기로 복학을 하니 자기랑 같이 학교를 다닐 복학생 오빠를 눈여겨봤을 것이다. 도도한 태도로 사무적으로 안내를 해줬던 걸로 기억한다.


까칠이는 전형적인 까칠한 여자애였다. 자기에게 실수를 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애가 있으면 철저하게 외면했다. 하긴 그러니까 별명이 까칠이였겠지만. 내가 복학하기 전에 까칠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맘에 안 드는 몇 명 남학생들의 데쉬를 빵빵 차대며 까칠하게 대했을 것 같다. 눈도 높고 콧대도 높았던 애니까.


그런데 나는 까칠이가 까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까칠이는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서울에 사는 복학생 오빠를 편하게 여기고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과는 아침, 점심, 저녁을 거의 매일 같이 먹을 정도로 서로 친했다. 그때 우린 모두 한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까칠이는 나와 아주 친해졌는데, 심지어 나 혼자 살던 아주 작은 원룸에서 같이 잠을 잔 적도 있었다. 물론 잠만!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겠다. 같이 서울행 기차를 타고 종종 집에도 갔다. 함께 기차를 타고 가면 내 옆에 앉아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통화내용을 듣고 있으면 가족을 살뜰하게 챙기는 효녀였다.


어느 날 까칠이가 빨간색 미니벨로 자전거를 학교에 타고 왔다. 내가 노란색 미니벨로 자전거를 산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까칠이의 빨간색 자전거 옆에 내 노란 자전거를 세워뒀다. 우린 같이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어느 날은 까칠이의 자전거 뒤에 내가 탄 적도 있다. 까칠이 자전거 뒷바퀴 위에 조그만 짐받이가 있었다. 까칠이가 자전거를 운전하고 나는 짐받이 위에 올라가서 까칠이 어깨를 잡고 문화예술대학 비탈길을 신나게 내려가 점심밥을 먹으러 갔었다. 아무리 가족같이 지냈어도 23살이었던 내가 21살 여대생 어깨를 잡고 자전거를 타니 가슴이 설렜던 것 같다. 까칠이는 식초를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그래서인가 까칠이 피부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다.


내 생일날 까칠이에게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한 적도 있다. 까칠이는 자기 자취방에 날 초대해서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까칠이가 미역국을 끓이는 동안 나는 방에서 푸시업을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잠시 후 까칠이가 미역국과 밥상을 차려왔다. 까칠이는 먼저 밥을 먹었다며 나 혼자 먹으라고 했다. 내가 미역국을 먹는 모습을 보는 까칠이의 표정과 눈빛은 재밌는 미소가 담겨있었다. 그렇게 까칠이집에서 까칠이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비가 오던 어느 날 밤 친구들과 밤늦도록 놀다 자취방에 돌아왔다. 자취방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데, 우리 과 남자애가 내 원룸방을 열더니 까칠이를 내 방에 던져놓고 갔다. 까칠이는 비명을 지르며 내 방에 짐짝처럼 던져졌다. 나는 너무 졸렸기에 그 모습을 보고 그냥 잠을 잤다. 아침이 돼서 일어나 보니 까칠이도 잠이 깼는지 서로 눈이 마주쳤다.

묘한 어색함이 흘렀다.

"안녕, 잘 가...."

나는 까칠이에게 인사를 하고 잘 가라고 했다. 까칠이는 뭔가 삐졌는지 퉁명한 태도로 집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시간 까칠이와 다툰 적이 있다. 내 말실수였다.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까칠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장소는 바로 그 테라스 난간이었다. 우리 거기서 서로의 말을 오해하며 급속도로 멀어졌다. 같은 전공실에서도 남남처럼 외면했다. 그 후로 까칠이는 다른 복학생 오빠들과 친하게 지내며 날 투명인간 취급했다. 어느 날은 학교 헬스장에서 혼자 운동을 하고 있는데, 까칠이와 다른 복학생 오빠 두 명이 함께 나타났다. 나는 그들을 모른 척 운동을 했는데 소외감이 들고 화가 났다. 그 후로 까칠이와 예전처럼 가까워지진 못했다. 어느 정도 편해질 때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과연 까칠이란 별명답게 까칠한 아이였다. 내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던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감정의 사계절을 보내고 어느덧 우린 졸업시즌이 되었다. 졸업앨범 사진을 문화예술대 앞에서 찍었다. 원피스를 입은 까칠이는 제법 여성스럽고 성숙한 모습이었다.

까칠이는 공부도 잘하고 성실했지만 디자인을 아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졸업 후에 유명한 디자인전문회사에 들어갔지만 실무 디자인을 하지 않고 디자인 기획을 했다. 그러다 얼마 후 한우목장을 하는 부잣집 아들내미와 결혼을 했다. 평소에 먹을 걸 좋아하고 경제관념이 예리한 친구라서 내조를 톡톡히 하며 잘 살 것 같았다. 졸업 동기들 사이에서도 일찍 결혼을 한 편이었다.


그런데 까칠이의 결혼식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까칠이의 이름이 내 예전 여자친구 이름과 똑같았는데 결혼 초대 문자를 예전여자친구 문자로 헷갈려서 결혼식에 안 갔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카톡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의 소중한 후배인 까칠이의 결혼식에 못 간 게 두고두고 미안했다.


오늘 점심밥을 먹고 누워서 낮잠을 자려고 하는데, 문득 어두운 밤 난간 너머 절벽에 걸터앉아 있던 까칠이가 생각났다. 까칠이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졸업 후 몇 년이 지나자 대학동기들의 결혼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 왜일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대학동기들에게 근황을 물어봐도 아는 친구들이 없다. 까칠이가 결혼한 지도 10년이 훨씬 넘었으니까, 애들도 많이 컸을 텐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돌이켜보면 까칠이는 별명과는 반대로 마음이 여리고 따뜻했던 아이였다. 그런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까칠함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리고 외로웠던 것 같다. 과에서 계속 1등을 했으니까 1등의 외로움이 있었을 테고. 남자친구가 없었으니까 외로웠을 테고. 까칠한 바리케이드를 치고 다녔으니 역시 외로웠을 테다. 그 외로움을 달래려 옥상 난간 너머 위험천만한 절벽에 앉아있었던 걸까? 답답한 마음의 한숨을 춘천의 밤바람과 함께 날려버렸던 걸까? 아니면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힘든 일이 있었던 걸까?


요즘도 까칠이는 난간 너머 외롭게 앉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지 궁금하다. 남편도 있고 애들도 있으니 위험한 행동은 자제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쉽게 변하나? 답답하고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어디선가 옥상 난간 너머 절벽에 앉아 탁 트인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까칠이가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다. 기억 속에 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애의 목소리의 톤과 속도가 그립다.


함께 먹고 자고 놀고 수업 듣고 과제하고 여행을 가고 삐지고 싸우고 배가 아파서 쓰러질 정도로 웃고 떠들던 우리들의 찬란한 20대였다. 지금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하철에 비친 세상풍파의 흔적들이 남은 얼굴을 외면하고 스마트폰만 스크롤하는 나이가 돼버렸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까칠이를 졸업하고 한 번도 못 본 게 더 좋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에게는 20대 새초롬한 표정으로 살며시 미소 짓고 있는 까칠이의 모습만 기억나니까 말이다.



까칠이와 싸우고 멀어졌던 그때의 시간은 고통스럽지만 지나고 나니 그 고통도 아지랑이처럼 사라지고 몽글몽글한 봄꽃 같은 추억들만 마음에 남겨져있다. 오랜 헤어짐의 시간은 지나온 시간들을 향기롭고 아련하게 바꿔주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까칠이와 계속 연락을 하고 지냈다면 그런 시간의 능력을 몰랐을 것이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처럼 보고 싶어 하고 애틋하게 느낄 수 만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벅찬 감격으로 넘쳐날 것 같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래서 타임머신을 타고 문화예술대학 테라스 난간 너머 외벽에 앉아있는 까칠이를 볼 수 있다면. 이번엔 나도 난간을 넘어가 벼랑 끝에 나란히 앉아서 춘천의 밤하늘을 같이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졸업 후에 다신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말실수 따위로 멀어지는 사이를 가만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찬란한 20대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오늘처럼 까칠이가 보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까칠이를 바라보고 인사할 것 같다.


"까칠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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