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데 덮친다 코로나 두 번째 확진
병원에서는 계속 호중구 수치를 얘기했다. 도무지 약을 써도 수치가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내염은 더 심해졌다. 아니 구강궤양이 되었다.
제발 입 좀 어떻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수치가 정상화되어야 입도 저절로 낫게 된다고 했다. 그저 가글로 소독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씹을 수 있는 게 없어 뉴케어로 식사를 대신했다. 뉴케어도 먹으면 입 안에 달라붙어 힘이 들지만 안 먹고는 살 수 없는 노릇이기에 억지로 힘을 내서 뉴케어를 먹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도 뉴케어 열심히 먹어라는 말 뿐이었다.
난 계획대로 서울로 향했고 퇴원해서 집에서 손주를 맞이할 줄 알았던 엄마는 아직도 병원이었다.
엄마는 면역 수치가 절대적으로 낮아서 보호자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간호 통합 병동이라고 해서 간호사가 간병까지 하는 곳에 입원을 했다. 볼 수도 없으니 정말 답답했다. 물티슈 빨대 등 엄마가 필요한 걸 챙겨서 병원에 갔다. 유리문으로라도 손주 보고 힘내라고.
그런데 간호사가 그것마저도 크게 제지했다. 엄마랑 같이 있던 병실에서 코로나 환자가 나와 지금 코로나 검사 중이라고 했다. 난 유리문 사이로 저 먼발치에서 간호사한테 저지당하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
그게 엄마가 서 있던 마지막 모습 인 줄도 모르고.
코로나는 정말 사람을 지독하게 열받게 했다. 1월 3일 시윤이를 출산한 날 엄마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이모한테 전해 들었다. 내가 걱정될까 온 가족이 나에게 비밀로 했나 보다. 엄마는 자가면역질환 지병이 있었기에 상급 병원으로 옮겨졌고 폐렴이 심각해져 병원에서 무려 한 달을 입원했다. 그때의 공포가 아직도 선명하다.
엄마는 역시나 또다시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다행히 크게 코로나 증상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코로나 병동으로 또다시 격리가 이어졌다.
도무지 나아지지도 않고 코로나만 얻은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답답하고 심장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동안 엄마는 체중이 10킬로 이상 빠졌다. 게다가 혼자 격리돼있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전화와 카톡뿐이었다.
그렇게 추석 연휴가 왔고 엄마는 이제 화장실에서 혼자 일어설 수도 없게 힘이 빠졌다. 병원에서도 이제 환자 상태가 나쁘니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