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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Dec 10. 2024

친정김장에 또 시어머니가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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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김장에 시어머니가 오셨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은 적중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친정김장에 시어머니가 오셨다.






11월 시어머니의 감기는 오래갔다. 목소리마저 변해 통화를 하거나 우리 집에 왔을 때도 걸걸한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아 한방감기약을 드렸다. 

시어머니는 친정에 김장하는 날이 언제냐며 먼저 물어보았다. 12월 첫째 주 토요일 김장하는 날. 울산에 큰 형부가 올해도 직접 키운 배추를 싣고 대구로 오고 있었다. 우리도 친정으로 가는 길 시어머니의 상태를(?) 미리 알기 위해 남편이 전화를 걸었다. 친정에는 팔순 된 부모님과 태어난 지 4개월 된 조카손주도 오기에 시어머니의 감기가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타이밍 좋게 목소리가 멀쩡했다. 친정 김장에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불러줘야 가지. 안 불러주면 우예 가노"

누가 고된 노동에 일부러 사돈을 부를까?

나는 친정도 친정이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시어머니의 마음도 잘 안다. 어머니는 일요일 일정이 없다. 일정이 없으면 쉬셔야 하는데 혼자 계시는 어머니는 적적하다. 외롭다. 그래서 친정에 통보를 했다.


어머니의 언니인 큰 이모님이 "니는 사돈 김장에 왜 가냐"며 나무랐다고 다. 이 영 이상한 건 아니지만 어머니는 우리 사돈 하고는 괜찮다며 개의치 않았다. 우리 시어머니는 용감하다. 용감한 시어머니를 친정도 반갑게 맞이한다. 오히려 내가 더 좋을 수도.




렁크에서 김장포대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아이고 형부 배추농사는 왜 이렇게 잘되는 거예요' 매년 갈수록 줄지는 않고 더 늘어나는 건 내 느낌인가. 큰 형부는 소소하게(?) 배추와 상추 농작물 키우는 걸 좋아한다. 이날 큰 형부가 친정 화장실 청소를 하고 배추 씻고 절이기까지 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일요일 아침. 전날 친정에서 형부들과 남편이 한잔 하는 바람에 차를 놔두고 와서 걸어가기로 했다. 시어머니와 친정 아파트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우리가 늦장을 부렸다. 시어머니는 김장도 도와주시면서 자꾸 뭐를 사갈까 물으시길래 괜찮다고 했지만 괜히 다른 거 사갈 바에 이왕 사는 거 "포도주스 사주세요" 해버렸다. 시어머니는 우리를 기다릴 틈 없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올라가셨다.






일꾼들이 모이니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우리 며느리는 쉬래이~ 어무이가 할 게"

"네~"

이럴 때 필자는 참 말을 잘 듣는다. 어머니를 부른 속내는 따로 있었다. 어머니 못지않게 용감한 며느리다. 시어머니 안 계시는 큰언니와 작은 언니는 나를 부러워(?)했다. 대신 이번에 수능 마친 조카와 20대 중반인 듬직한 조카가 합류하였다. 그들이 다 먹을 김치다. 김장만 일이 아니다. 대학생인 조카는 김치가 담긴 통을 닦고 뚜껑을 닫아 자리를 이동시켰다. 남편은 이번에도 수육담당을 맡았다. 빈둥대며 눈치를 살피던 나는 몸은 쉬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일꾼들의 힘을 실어주기 위해 커피를 사 오고 분명 있었는데 없다는 설탕을 사러 다시 나갔다 왔다. 때마침 들어온 4개월 된 조카손주가 이렇게 반가울 때가. 조카손주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평소 시어머니의 김치로 연명하는 나는 아예 통도 들고 오지 않았다. 이미 우리 집 냉장고는 들어갈 곳이 없다. 그 와중에 며느리 김치까지 야무지게 챙겨주는 시어머니. 여긴 시댁인가 친정인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년 김장도 친정에 시어머님이 오실 것이 믿어 의심치 않다. 그러니 아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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