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으려고 계단을 오르는데 실내에 있을 때는 몰랐던 서늘함이 스며들었다. 올라가다 보면 열나겠지.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갈 때 겉옷을 입었다. 신호등을 기다린다. 얼른 바뀌길. 빨리 가고 싶다. 30분 안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글쓰기 창을 열었다. 무슨 글을 쓸지 정하지도 않은 채 그냥 열었다. 다음 문장을 이었다. 지금처럼.
평소 긴장할 일이 없다. 어제가 오늘 같다. 늘 똑같은 일을 한다. 시간만 되면 출퇴근하고 운동을 하거나 집에서 강의를 듣는다. 일상에 글쓰기가 있다. 글쓰기 창을 열 때마다 생각을 하게 된다. 왜 글을 쓰고 싶은지, 이 글을 써서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쓰는 이유는 다양한데 그 생각이 항상 목적지를 향하지는 않는다.
글쓰기 창을 열면 느슨했던 마음에 각을 잡게 된다. 어깨를 편다. 키보드에 손가락 열개를 가지런히 올려 자리를 배치시킨다. 글이 이어지지 않을 땐 깍지도 껴보고 무릎 위에 손을 올려 기다리기도 한다. 한 문장, 한 편의 글이 완성되면 설레기도 부끄럽기도 하다. 열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릴 때보다 백스페이스바 누를 때가 더 날렵하다. 글을 쓰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십이 월이면 브런치 작가 된 지 삼 년이다. 작가 승인받고 일 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재밌게 썼다. 매일 발행도 해봤다. 못 써도 쓰는 자체가 좋았다. 지금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자세히 써내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변했나. 초심이 사라졌나. 그러면서 블루투스 키보드는 수시로 연결한다.
직장 다닌 지 구 년 넘었다. 평범한 일상이었던 내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가 지루했다. 그냥 살던 대로 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그때 글쓰기가 들어왔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쓰지는 않는다. 어렵기 때문이다. 뻔뻔해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내가 싫으면 무얼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쓴 글이 소중하다. 한 문장, 한 문단을 어떻게 썼는데 지우고 싶지 않다. 하루가 잘 간다. 어제가 그립다. 쓰다 보니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이왕이면 나도 좋고 읽는 사람도 하나라도 얻어갔으면 한다. 여태 써놓고 모르겠다고? 이렇게 아무 맥락 없는 문장조차도 내 생각이다. 멈추지 말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기. 그래야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자꾸 연습하기. 이상한 글 써내기. 어떤 말은 던져서 잠이 안 올지도 모른다. 설레거나 긴장되거나 둘 다 두근대는 건 같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인지 걱정인지 둘 중 하나다.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오늘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발행으로 이어지면 분명 누군가는 읽는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사실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만 내 마음의 변동은 일어난다. 또 써냈다. 이렇게도 쓸 수 있었네. 내 글을 보고 이것보다는 잘 쓸 수 있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성공이다.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쓰면 되겠네라는 생각 했으면 좋겠다. 아무 말로 시작하기. 쓰다 보면 내가 보인다. 내가 원하는 게 보인다. 적지 않으면 금방 한 생각도 날아가버린다. 내가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한 줄부터 적기 시작했다. 쓰는 순간 나로 인해 설레고 누군가에게 닿을까 긴장도 된다.
추우면 움직이거나 옷을 입으면 되고 글을 쓰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면 10분이라도 쪼개서 세 줄이라도 썼다.
촉박한 점심시간에 쓴 글이 완성되었다. 이게 마감이라는 건가. 잠들기 전 퇴고를 했지만 마구 쓴 초고가 없었다면 쓸 수 없었다. 신기하다. 이러니 또 시도하지. 발행은 긴장도 설레기도 한다. 어떤 떨림이든 두 가지다 다음으로 이어나가게 만든다.
개인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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