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실장님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산모의 친정엄마였다. " 네. 출산하고 한약 드시면 아기도 산모한테도 좋아요." 바로 이어지는 실장님 목소리가 한층 꺾였다. 산모는 출산 후 삼일 뒤 아이를 잃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가도 뜨거워졌다. 제왕절개를 했다고 한다. 몸은 아이를 낳은 엄마인데 아이가 없다. 가슴이 돌덩이처럼 단단해지고 젖이 돌 때마다 눈물 흘릴 산모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번 주에 내원한다는데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것 같다.
추석 연휴 시작되고 부산 여행을 갔다. 첫날부터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중3 딸아이와 다니면서 참고 또 참았다. 비 오는 건 시원하기만 하지 마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랬던 마음이 젖은 신발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내리는 비만큼 울고 싶었다. 차라리 걸었다면 빗물인지 눈물인지 헷갈릴 텐데 차만 타면 울컥했다. 흐르는 눈물은 막을 수 없어도 우산으로 눈물을 가리고 싶었다.
"아! 좀 잘 보라고 물 떨어졌잖아"
손등에 떨어진 빗물을 보라고 한다. 평소 같으면 사과하거나 그냥 넘어갈 것을 종일 날 선 말투를 들으니 쌓인 감정이 폭발했다. 그러려니 넘어가던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미안하다고 하면 될 것을" 그때부터 구시렁대기시작한다. 참을 수 없어 일부러 아이 옷에 우산을 털고 돌아섰다. 역시나 욱하고 나서는 후회했다기보다 후련했다. 그 순간만큼은.
천둥 번개가 쳐도 난 괜찮다. 사춘기 아이의 말 한마디보다는 낫다고 메모장에 기록했다.
비는 그치고 시간은 흐른다. 길고 긴 연휴가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을 살아간다. 시간 지나니 그 순간의 감정은 조금씩 무뎌져간다. 여행에서 하루 한번 눈물 흘렸던 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그때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면 다시 욱하기도 하지만 울컥하지는 않는다. 아이 덕분에 웃고 아이 때문에 속이 뒤집어진다.
시간 지나면 현재의 상황보다 좋아지길. 산모에게 지금 어떤 위로도 되지 않을 것 같다. 예쁘고 건강한 아기 꼭 다시 만나기를. 원장님이 몸만 회복되는 약이 아니라 마음까지 잘 추스를 수 있는 한약을 지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