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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로 아이와 싸웠다

by 햇님이반짝


마음이 쓰인다. 내년이면 큰 딸이 고등학생이 된다. 분명 일곱 살 때 일 다니기 시작했는데 돌아서니 지금인 기분. 이렇게 빨리 클 줄 몰랐다. 마 퇴근 시간만 기다리던 아이는 이제 집에 와도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고등학교 원서도 쓰기 전 진로에 대한 안내문이 왔다. 나 때는 대학 들어갈 때 진로를 정하지 않았던가? 딸아이는 당장 내일 정해야 할 것처럼 고민하기 시작한다. "뭐 하지? 나는 컴퓨터 쪽으로는 아닌 것 같아. 코딩도 어렵고, 연구소는 어때? 간호, 심리상담사, 경영학과, 신소재, 바이오... "

아이는 종류별로 나열하며 읽기 시작한다. 그전에 도서관에서 진로에 관한 책을 빌려주며 읽어보라 해도 거들떠도 안 본 게 생각나 순간 속이 부글거렸다.


다음 날, 다른 엄마들은 미리 알아보고 과목선택도 해주는데 뭐하는거냐며. 나보고 고등 관련공부 좀 하란다. 평소 오는 말이 곱지 않아 쌓였던 찰나 갑자기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는 아이가 야속했다. "네가 어디에 관심 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과목을 정해주니?" 한번 쉬었어야 했는데 참지 못했다.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 가?" 순간 엄마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이다. 본인도 어디로 갈지 모른다. 중학생이 되면서 본인 주관이 강해진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은 잔소리가 되었다. 그렇다고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갈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혹시나 하는 사심을 가득 품고 남편이 한의대는 어떠냐고 묻자 거기는 쉬운 줄 아냐며 눈을 흘긴다. 조금만빡세게(?) 공부하면 영 말도 안 되는 건 아닐 텐데 미리 포기하는 대답에 힘이 빠진다. 물어보긴 왜 물어보는지.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고교학점제로 아이의 마음이 급해졌다.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여태 관심 없다가 발등에 불 떨어진 듯 폭풍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세 명중 한 명은 자퇴를 생각한다는 글, 고교학점제 폐지, 사교육 의존도 증가, 교육 격차 심화에 대한 기사가 줄줄이다. 나만 불안한 게 아니구나. 고등 3년 공부에만 전념해도 힘들 텐데 신경 쓸 일이 많아졌다. 당장 진로를 정하는 건 쉽지 않겠다.



아이의 인생을 하루아침에 결론 내릴 일이 아니다. 부모가 정해주는 길보다 본인이 선택하고 왜 그쪽으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진짜 내 길이 된다. 고교학점제는 능동적인 학습 설계자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제도라고 한다. 중학교 3년 동안 공부하고 수행평가준비하고 돌아서면 시험치기를 반복했다.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중3 마무리 시점 이제 한숨 돌리려는데 고교학점제, 5등급, 진로선택 등 답도 없는데 풀기 싫고 불편한 숙제를 떠안았다. 중요한 건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게 문제다.

첫째, 당장 돈벌이가 안 돼도 그 일을 계속하고 싶은 지 생각해 본다.

둘째, 무엇을 배우기보다 왜 배우는지 질문하기

셋째, 관심 있는 분야 적어보기. 진로 상담하기(무료 컨설팅 찾아봐야지. 사주를 봐야 하나-_-)



고등 3년 동안 아이만 바라볼 순 없지만 힘은 되어주고 싶다. 이 일이 내 일이다라고 확신하는 직업 찾으면 좋겠지만 당장 선택할 수 없다면 우선 학교 공부에 집중하라고 말해줘야겠다. 나도 불안하고 걱정되지만 아이만큼은 집에서 머무는 동안 열여섯 소녀로 무엇을 하고 싶은 싶은지 이런저런 꿈꾸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시간에 떠밀려 강제로 꾸는 꿈이 아니길. 꿈은 설레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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