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벤트보다 더 중요한 일상

by 햇님이반짝

오늘은 내 생일이다. 자정 되니 네이버에서 제일 먼저 축하해 준다. 마흔 중반쯤 되니 생일이어도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그냥 생일인가 보다 며 맞이한다.

지난주 친정엄마 생신이어서 목요일 같이 저녁 먹고 주말에 큰언니와 작은언니네 모여서 밥 먹고 공원나들이도 갔다. 15개월 조카손주와 팔순 넘은 우리 엄마까지 다 같이 가을을 걸었다.


직장에선 월요일마다 해장국을 먹는다. 생일자가 있으면 그날은 미역국을 끓여준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역국을 먹을 수 있었다. 고등어김치찜까지 나와서 든든하게 점심을 먹었다. 당연한 게 아닌데 어련히 해주시겠지라는 마음이 있어 집에서 따로 끓이지 않았다.


오후에는 중학교 친구가 커피폰을 보냈다. 일주일 전 내 생일이 다가온다고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잊지 않고 챙겨주어 고마웠다. 큰아이와 어린이집을 함께 보낸 12년 지기 육아 동료들도 축하인사와 선물을 보내주었다. 한 언니는 지나가는 길이라지만 내가 일하는 곳으로 와 선물과 붕어빵도 사다 주었다.

주말에 친정식구들과 케이크를 불어서 오늘은 따로 케이크는 안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제 남편이 당근조각케이크를 사줘서 그걸로도 충분했다.

퇴근시간 다가오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원래 본인이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케이크를 나보고 받아오라는 거다. '네? 혹시 머 이벤트라도 준비하려고 시간 버는 거 아니야? 그럼 나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최근 가장 추운 날씨였다. 집과 반대방향으로 가야 했다. 매서운 바람을 뚫고 케이크를 받았다. 커피도 사려고 했는데 추워서 바로 가야겠다 싶었다. 집 근처에서 카카오톡을 보았다. 이 무슨 사진인고? 데이터연결을 하지 않아 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생일 풍선?! 2초 기대했다.

세면대 영상이 여기서 왜 나오니? 202호에서 물이 샌다고 남편에게 연락이 왔단다. 심장이 철렁.

세입자에게 연락 올 때가 제일 긴장된다. 다행히 수도배관을 잠그면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벤트보다 더 떨린다. 크게 고장 난 거 아니어야 될 텐데.

혹시나 두근대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남편이 나를 반긴다. "내 2초 기대했잖아. 오빠가 나보고 케이크 가져오라 해서."

집에 오자마자 202호 배관호수를 갈아주었단다. 도구 찾는데 시간 보내고 그래서 케이크 픽업도 급하게 나를 시켰던 거다. 마침 집에 호수 여유분이 있어서 바로 갈아줄 수 있었다. 2초 기대했던 생일 이벤트보다 속전속결 배수관 해결한 남편에게 고생했다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나에게 준 금일봉에서 수고비로 오만 원을 바라기 전까지만.


남이 해주는 이벤트 바랬다가 정말 심쿵한 날이 될 뻔했다. 다른 이에게 어떤 것도 바라지 말아야겠다.

생일이 별 건가. 가족과 함께하고 주변 사람 안부에 감사하다. 이제 막 걸음마 하는 조카손주와 팔순 넘은 엄마와도 오래도록 매년 생일 함께 하고 싶다. 심이 과한 걸까.

평범한 일상 무사 무탈한 하루가 소중하다는 말이 절로 나다. 그냥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거다. 생일 이벤트 뭣이 중헌데?! 남편과 아이들 건강하고 오늘처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저녁 먹을 수 있는 거. 그 어떤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진짜 이벤트였다는 것을.


개인 저서:

현실 엄마, 브런치로 나를 키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피치 강의 수강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