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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같은 덧신

by 햇님이반짝


딱딱한 대나무바닥을 하루 종일 밟고 돌아다니다 굳은살이 박혔다. 혹은 더 단단해졌다. 뜨거운 물에 담가도 보았고 제거도 해보았지만 더 깊은 상처만 남길 뿐 해결되지 않았다. 이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그랬다.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사물함에 가방을 넣고 가운을 입는다. 양말을 벗는다. 덧버선을 먼저 신고 덧신도 장착한다. 준비완료. 이제 열 시간 동안 움직이고 서 있어도 문제없다. 나와 한 몸이 되어 온종일 열일을 한다. 덧신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템이 되었다.



처음 이것을 마주했을 때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싶다가도 이제라도 알게 된 게 어디야하며 애지중지했다. 이제 덧버선만 신고 대나무바닥을 밟고 일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슬리퍼도 신어 보았다. 철석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다. 급하게 움직이다 보면 잘 벗겨지기도 했다. 이제 그런 걱정은 없다. 분신 같은 덧신이 나의 일상을 지켜주고 있다. 덧신은 나에게 공기와도 같다. 일 할 때 덧신이 없는 건 용납 못한다. 세탁하기 위해 집에 들고 와 다음 날 깜박하고 두고 왔다. 집에서 4분 거리 얼른 청소를 끝내고 뛰어갔다 왔다. 아무도 모른다.




실장님은 덧버선마니아라고 할 만큼 잊을만하면 종류별로 사다 주었다. 덧신(쿠션마루)이 생기기 전까지. 고객만족 백 프로가 되다 보니 홍보 아닌 홍보가 되었다.



몇 년 신었더니 발목이 늘어났다. 가끔 벗겨지기도 한다.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불편할 정도는 아니니까. 이번 설에 실장님이 새 덧신을 사다 주었다. 실장님, 나, 다른 직원과 실장님 친구, 가족들까지 총 열 켤레를 샀다. 발도 넓고 통도 크시다.

덧버선보다 덧신. 이 녀석 덕분에 지금까지 잘 버텨온 거라고 생각할 뻔했다. 8년 넘게 무사히 근무할 수 있었던 건 덧신을 챙겨주는 실장님 덕분이다. 덧신만이었으면 이렇게 장황하게 쓰진 않았을 거다. 가끔 원장님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칠순이 넘으신 실장님(원장님 누나)이 너무 오래 있었다며 그만둬야겠다고 하면 "실장님 그만두면 저도 그만둘 거예요"라고 할 정도로 믿고 의지한다. 농담반 진담반이 아닌 농담 20%, 진담 80%다.



당장 없으면 일하는데 지장이 간다. 어느새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실장님이 사다 주신 덧신은 내 발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것과 같다. 고마움, 감사, 일상, 생계, 너무 멀리 갔나. 그만큼 소중해졌다.

숨 쉬듯 사용하는 물건들이 내 곁에 있다. 원래 있는 거니까. 그런갑다하고 넘기지 말고 한번 더 애틋하게 바라보고 오래 사용해야겠다.



이번 설에 새 덧신을 받았으니 앞으로 몇 년 더 버텨야(?) 하나. 다른 이유 없지 않은 이상 쿠션 짱짱한 새 신발 신고 나간다 소리는 입밖으로도 꺼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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