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당신의 나이도, 당신이 얼마나 잘 추는 지도, 안무가 얼마나 훌륭한 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춤에서 중요한 건, 같이 하는 서로를 도와주고 자신을 억제하는 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추는 춤을 즐기는 겁니다.
- Zin Proud
2018년 11월 24일 토요일
처음으로 단체부문으로 대회에 참석하는 날, 첫눈을 맞으며 대회장으로 가고 있었다. 갑작스레 대회에 참석하게 된지라 연습 기간이 너무 짧았다. 나를 제외한 둘은 초보자에 대회는커녕, 무대에 오르는 것도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셋이서 같이 춤을 추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입상은 기대도 안 했다. 뻔한 말이지만 그저 참석하는데 의의를 두자고 말했다. 그렇게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대회에 참석하려 했는데,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오르막 길을 힘겨워하는 차에 앉아 헤어롤로 머리를 말며 태연한 척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참석하는 것조차 가능할지 걱정이 되었다. 첫 대회인지라 떨릴 만도 할 텐데 둘은 크게 긴장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1년 전 첫 대회 때 청심환을 먹으려 했을 정도로 떨렸는데... 다행이다 싶은 한편, ‘정말 포기한 건가?’ 싶기도 했다.
다행히도 차는 미끄러지거나 퍼지지 않고 무사히 대회장에 도착했다. 예상 시간을 훨씬 넘기긴 했지만. 더욱 다행히도 우리만 늦은 게 아니라서 시작 시간이 연기됐다. 마음을 추스르고 화장을 마무리한 뒤에 지혜 씨와 선미 씨의 화장을 도와줬다. 두 번째 대회 참가인 데다 이번에는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첫 번째만큼 떨리지는 않았다. 반면에 두 사람은 이제야 실감이 나는지 긴장한 표정이 또렷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두 사람을 데리고 마지막 점검을 하기로 했다. 괜찮다며 필요 없을 거라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순서를 잊은 부분도 있고, 턴의 방향이 서로 다른 부분도 있었다. 솔로 댄스의 경우, 안무를 잊었다 해도 아무 동작이나 해도 괜찮다. 관객들은 원래 안무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멈추지만 않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않게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물론 초보자가 그렇게 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룹 댄스 특히 세 명이 춤을 추는 경우, 한 사람이 안무를 잊어버리면 크게 티가 난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여기서 다그쳐봐야 더 긴장만 할 뿐이다.
“우리는 오늘 못 올 뻔했는데 왔어요.
진짜로 참석한 데 의의를 두고 해요. 파이팅. ^^”
경력이나 경험이 좀 더 많은 내가 두 사람에게 좀 더 신경을 쓰고 맞추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무대에 오르고 내 춤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경험이 있다고는 하나, 나도 이제 두 번째 대회일뿐이었다. 순서를 마치고 내려가니 선생님이 박수를 치면서 맞아줬다. 몇 군데 틀리긴 했지만 티 안 나게 잘 넘어갔다고. 아마 관객들은 잘 모를 거라며 위로했다.
우리가 할 일은 다 끝났고 수상의 기대가 없으니 그냥 가도 됐지만 다른 사람들의 공연을 보기로 했다. 어린이가 아닌 아마추어 성인의 공연을 보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잘하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와 비슷한 팀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춤은 만삭의 댄서가 추는 춤이었다. 처음에는 살이 좀 찐, 배가 큰 사람인가 했다. 살찐 것과는 배 모양이 확연히 달랐지만 설마 임산부가 벨리 댄스를, 그것도 대회에 참석할 리 없다 생각했다. 관객석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만삭의 임산부가 분명했다. 보통의 안무와는 다르게 격한 움직임이나 배를 이용한 안무가 없고 좀 느리게 췄지만 오히려 안정적이고 우아해 보였다. 그러고 보면 벨리 댄스의 기원은 ‘다산을 바라는 종교의식’이다. 원래 목적이 생명의 수정과 분만의 고통,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행복, 모성애를 표현하고자 하는 춤이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걸 눈앞에서 본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가장 ‘원래의 목적에 맞게 추는’ 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춤이 끝나자 누구보다도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또 다른 눈에 띄는 공연은 어느 노년 여성의 춤이었다. 솔직히 춤은 대회에 참가할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못 추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이어졌다. 본인도 못 하는 걸 알고 있는 듯했지만 그러면 어떤가. 누구보다도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데... 안무를 잊었는지 중간에 끊기기도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춤을 마쳤다. 역시 큰 환호와 박수로 그녀의 노력에 응답했다.
모든 참가자의 춤이 끝나고 드디어 시상식. 아이들이 줄줄이 상을 받았다. 우리도 동상을 받았다. 참가자 대부분에게 상을 주는 아마추어 대회였던 지라 그야말로 ‘참가상’이었다. 그래도 기뻤다. 지혜 씨와 선미 씨는 물론, 지난번에는 아무 상도 못 받았던 내게도 첫 번째 상이다. 하지만 상을 받는 것보다 더 좋았던 건 너무나도 아름다운 특별한 두 공연을 본 것이었다. 나의 꿈인 노년을 위한 무용단, “실버벨~리”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날이기도 하다.
그림 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19210735882224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