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처럼 되어라.
물 위에서는 너무도 우아하고 조용하지만,
물 아래에서는 미친 듯이 발을 젓고 있다.
- 마이클 케인
대회가 끝난 후에도 같은 안무를 계속 연습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너무 튀거나, 너무 못해서 조화가 안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그해 연말에는 공연도 함께 했다. 여전히 조금씩 틀렸지만 한 달 전에 비해 틀린 후 살짝 웃을 수도 있는 여유도 생겼다.
강사가 되기 위한 수업도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공연을 마친 후 잠시 쉬어 갔을 텐데, 우리는 그럴 수가 없었다. 강사 자격시험이 이제 두 달 정도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었다. 강사 자격시험은 이론과 실기로 구성되어 있다. 실기는 워밍업, 기본동작 콤비네이션, 강사 안무 2개, 개인 안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인 안무를 제외한 모든 항목은 같이 연습했다. 개인 춤은 각자의 장점과 개성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만들어야 했다. 선생님과 여러 번의 논의하고, 나의 취향을 고려해 가장 자신 있는 동작을 넣어 안무를 짜야했다.
사실 나는 이미 마음에 두고 있는 춤이 있었다. 정확히는 하고 싶은 안무가 아니라 쓰고 싶은 도구였다. 지난번 대회에 참가했을 때 임산부와 노년의 여성 외에도 인상 깊은 공연이 있었다. 물결치듯 아름다운 곡선과 면을 만들어 내는 도구를 사용한 춤이었다. 아름다운 곡선의 움직임에 홀려 정작 안무는 어떤 안무였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게 문제였지만... 베일 같기도 하고 부채 같기도 한 이상한 도구였다. 선생님께 물어보니 도구의 이름은 팬베일, 말 그대로 부채(fan)와 베일(veil)을 합쳐 놓은 것이다. 이걸로 하겠다고 했다. 대회 때 봤던 것처럼 펜베일로 관객의 눈을 홀리면 안무는 잘 못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음악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스티브 바라캇(Steve Barakatt)의 플라잉(Flying)을 골랐다. 플라잉의 가볍고 경쾌한 리듬에 맞춰 펜베일을 우아하게 휘날리는 장면이 그려졌다. 평소 나의(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와도 어울리는 아름다운 춤이 될 것 같아 기대가 컸다. 선생님은 내 의견에 동의하는 듯했지만 뭔가 개운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어쨌든 안무가 완성됐고, 연습을 시작했다.
팬베일을 잘 사용하면 동작이 좀 부족해도 될 거라는 나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팬베일의 화려한 움직임 때문에 안무가 단순해지는 것은 맞았지만 팬베일을 잘 사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물결 모양은 그냥 팬베일을 흔들어댄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잔 물결은 팔을 흔들지 않고 손목의 스냅을 빠르게 이용해야 한다. 휘날림을 만들려면 손목과 팔을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손목과 팔이 남아나지 않았다. 또 안무는 단순했지만 베일에 어울리는 우아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턴과 스텝이 많았다. 어지러웠다. 게다가 팬베일을 흔들면서 턴을 돌고 이동하려니 헷갈려서 잘못된 방향으로 돌기 일쑤였다. 도구 없이 어려운 안무를 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강사 과정을 하며 어려운 동작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까. 선생님의 개운하지 않았던 표정이 이해가 됐다. 손목을 사용해서 팬베일을 잡는 것에만 1주일을 넘게 보냈지만, 여전히 팔이 움직였고 물결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팔은 또 어찌나 아프던지... 시험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안무로 바꾸고 싶었다. 당연히도 선생님은 반대했다. 팬베일과 음악이 나와 아주 잘 어울린다나... 이미 춤에 맞는 의상까지 준비해 놓았단다. 팬베일은 원래 제대로 잡는 데만 원래 한 달 이상 걸린다며 그 정도면 잘하는 거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다시 안무를 짜고 싶지 않아서 그럴 거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어쨌든 격려를 받으니 다시 힘이 나는 듯했다.
팬베일을 집에 가져가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팔이 뻣뻣해지는 고통을 참으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나?’ 한숨 쉬며 그만 멈추려고 속도를 늦추는데 갑자기 베일의 모양이 달라졌다. 그 속도로 천천히 여유 있게 움직이니 팔이 아프지 않았다. 드디어 손목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손목으로 움직이자 물결 모양도 만들어졌다. 여전히 우아한 물결과는 거리가 먼 경망스럽고 불규칙한 물결이지만 만들어진 게 어딘가?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이제 아름다운 물결이 만들어질 날도 멀지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