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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Oct 04. 2023

그해, 첫눈이 내리던 날

2018년 11월 24일 토요일

아침 일곱 시에 집을 나서는데 눈이 오기 시작했다. 올겨울 첫눈이다. 조금 오다 그치겠지 했지만 그래도 서둘러 택시를 탔다. 지혜 씨 집으로 가는 10분 동안 눈발이 점점 거세졌다. 도착해 보니 선미 씨는 이미 와 있었다. 지혜 씨 차에 짐을 옮기고 같이 일산으로 출발했다. 평소라면 3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였지만 눈이 오고 있다.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니 예상 시간이 한 시간이 넘게 나온다. 안 되는데... 늦을 것 같아 서둘러 출발했다. 일산으로 가는 동안 첫눈은 함박눈으로 변했다. 11월에 내리는 눈이 이래도 되나? 첫눈이 이렇게 많이 왔던 적이 있었나? 첫눈은 늘 잠깐 내리다 말았기에 왔다는 말만 들었지, 내 눈으로 직접 본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첫눈은 달랐다. 신호에 걸려 잠깐 멈춰 있는 동안 밖으로 나가 창문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할 정도로 눈이 내렸다. 여유 있게 도착해서 메이크업과 머리를 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빠듯하게 도착할 것 같아서 차 안에서 헤어롤을 말고 기본 화장을 시작했다.


지혜 씨와 선미 씨와는 얼마 전부터 강사 과정을 같이 하고 있었다. 같이 연습하는 작품으로 대회에 나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선생님의 권유로 참가신청은 했지만, 대회날까지 연습 기간이 석 달도 안 될 거라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현실은 기대보다 좀 더 처참했다. 초보자 지혜 씨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동작이 많아서 안무를 가능한 단순하게 해야 했다. 일이 바빴던 선미 씨는 안무를 외우는 게 어려워 보였다. 셋 중 가장 잘했던 내가 중심을 잡았는데, 너무 튀었다.

“무대에서 춤을 출 때는 자신 있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인 것처럼 잘난 척하면서 춰야 해요.”

지난해 첫 번째 대회를 앞두고 소심했던 내게 선생님이 했던 말이었다. 두 번째 대회를 앞두고 선생님의 조언을 떠올리며 연습했는데, 이건 독무 때나 해당됐던 말이었다. 그룹으로 춤을 출 때는 아무리 잘하는 한 사람이 있어도 혼자 튀는 것보다는 모두가 잘 어우러지는 조화가 더 중요했다. 그동안 계속 혼자 연습하다 보니 잊고 있었다. 사실 초기에 두 사람이 너무 못해서 맞추기 어려웠던 것도 있었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11월 초에 여행으로 2주나 연습을 나올 수 없었다.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겠다 싶었는데 더 나쁜 일이 있었다. 연습을 빠진 2주 동안 안무를 거의 다 잊었다. 게다가 몸도 둔해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가 없던 2주간 둘이 안무를 모두 외웠고 디테일한 표현 연습을 시작했다는 것. 더듬더듬 눈치를 보며 안무를 하는 내가 둘과 비슷해진 거였다. 선생님이 말한 조화는 이런 게 아니었을 텐데... 어쨌든 튀는 사람이 없어지자 균형감은 있어 보였다. 대회까지는 이제 열흘 남짓 남았다. 가능한 매일 모여서 연습을 하기로 했다.


첫눈이 함박눈으로 변했던 2018년의 같이 강사과정을 하던 두 사람과 그룹으로 대회에 참석했던 날이다. 두 사람은 대회 참가가 처음이라 그렇지 않아도 긴장을 많이 했는데,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서 무척 힘들어했다. 나도 초보지만 그래도 대회에 참석했던 경험이 있던 지라 긴장한 그들을 대회 선배 겸 리더로 챙겨야 했다. 그래야 했는데… 나 역시도 쏟아지는 눈을 보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떨지 말고 잘하자고 힘을 북돋워줘야 하는데, 무대에 오르기는커녕 대회장에 제시간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그림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search/2/image?phrase=winter+car+st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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