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Feb 09. 2024

히말라야 황제트레킹을 마치고

고산에서의 비도덕과 황제트레킹 논란


8000m 이상에서는 사람이 쓰러져 있어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비도덕이 아니라고 한다. 만약 그 사람이 살아있다면 뭔가 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죽었다고 여기고 그냥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길을 간다고 한다. 8000m 이상에서 쓰러져 본 적이 있는 산악인 곽정혜 대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피레네 산맥 이쪽과 저쪽의 정의가 다르듯, 고산에서의 정의도 다르다. 서는 높이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정의도 달라진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쿡팀을 두는 것을 황제트레킹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는 서양인들은 포터도 두지 않고 자신의 모든 짐을 지고 오르곤 한다. 이번 마르디히말 코스에서 한 젊은 한국여성도 그렇게 오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우리 마차푸차레 트레킹팀은 가이드도 세 명이나 두었고, 포터로 당나귀도 열 마리나 부리고, 쿡팀은 무려 8명이나 되었다. 누가 황제트레킹이라 비난해도 할 말이 없는 구색이다.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트레킹 참가 멤버 20명까지 합하면 웬만한 히말라야 원정대 저리 가라 할 규모다.



말은 황제트레킹인데 사람들 행색은 거지가 따로 없다. 방금 포카라로 내려와서 일주일 만에 겨우 샤워를 했다. 이렇게 황제트레킹을 해도 전기도 수도도 인터넷도 거의 안 되는 곳에서 지내야 한다. 외풍이 세서 주는 이불만 덥고 자면 새벽에 무릎이 시려서 잠을 잘 수 없는 곳에서 숙박한다.


포터에게 대부분의 짐을 맡기고 멤버들이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오르게 했다. 마차푸차레 코스는 북한산을 5일 연속 오르는 정도의 트레킹 강도다. 포터에게 짐을 맡기고 오르기 하면 전문 산악인이 아닌 사람도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맛볼 수 있다. 당나귀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덕분에 히말라야의 지평이 넓어진다.


트레킹 중 식사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세계 어디든 산촌은 식자재가 제한 적이다. 더군다나 물류가 어려운 히말라야는 더 그렇다. 쿡팀을 따로 두지 않으면 산행 일주일 동안 무국적의 롯지 음식을 반복적으로 먹어야 한다. 입에 맞는 사람은 상관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거의 먹는 것 없이 산을 올라야 한다.  



쿡팀을 두면 트레킹 일정 동안 한식을 먹을 수 있다. 네팔 현지에서 이번 트레킹을 기획해 준 벅타님이 수배를 잘해서 최고의 팀을 불러왔다. 식사 시간이 힐링 시간이었고 식사로 원기 회복을 하고 길을 나섰다. 고산증에 시달린 일행도 국물이나 누룽지를 먹으면서 기운을 차렸다. 이런 세팅을 하면 평범한 사람도 히말라야를 꿈꿀 수 있다.


포터도 쿡팀도 가이드도 없이 오롯이 나만의 히말라야를 즐기는 것은 멋진 일이다. 나 혼자 왔다면 나도 그렇게 히말라야를 온전히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쁜 현대 도시인을 위한 어른의 여행’을 기획하는 여행감독이다. 최적의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나의 숙제다.


포터도 쿡팀도 가이드(셰르파)도 없이, 산소통도 없이 고산을 오르는 것을 알파인 등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알파인 방식이 아닌, 산소통 들고 셰르파 도움 받고 오르는 것도 우리는 등정으로 간주한다. 마찬가지로 이런 황제트레킹도 히말라야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세 명의 가이드와 세 명의 마부와 여덟 명의 쿡팀의 일자리 창출을 한 것으로 우리의 황제트레킹을 자위해 본다. 히말라야는 그들의 소중한 일터다. 산을 내려가면 그들도 가족과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히말라야 한 번 와보고 끄적거린 것으로 히말라야 포터나 가이드가 일생 벌 돈보다 많은 돈을 버는 작가도 있고, 평생 히말라야에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내려도 입에 풀칠하기도 쉽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것이 인생 아닌가.


히말라야에는 정말 큰 산이 많다. 그런데 눈앞의 작은 언덕이 그런 큰 산을 가린다. 여행감독으로서 내 역할은 그런 작은 언덕을 넘겨주는 일이다. 스스로 언덕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내 알바 아니다. 나는 그저 작은 언덕 뒤에 큰 산이 있다는 것을 들려주는 사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 좋은 얘기는, 나중에 따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