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도시 탈린에서의 5박6일
에스토니아는 구소련에서 분리한 독립국가 중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와 거의 비슷한 나라인데, 머지않아 역전될 것 같다. 조만간 ’발트3국‘이 아니라 ’ 북유럽 선진국‘으로 재분류될 수도.
1년 만에 찾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온통 공사장이었다. 이렇게까지 동시에 공사를 많이 하는 수도는 본 적이 없다. 탈린은 탈바꿈 중. 작년 모습과도 많이 달라졌는데 내년에는 또 얼마나 달라질지 기대된다.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은 코카서스 3국(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과 대비된다. 둘 다 구소련에서 독립했는데 발트 3국은 국민소득 2만불 이상의 중진국으로 진입한 반면 코카서스 3국은 아직도 만불 이하다. 발트 3국은 민주주의도 함께 발전했는데, 이에 대한 비교 분석 연구가 궁금하다.
보통 발트3국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탈린 올드시티에서 시그니쳐 관광지를 돌아본다. 올드시티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잘 보전된 곳이다. 하지만 탈린의 ‘어제’만큼 ‘오늘’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번에 탈린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구역 세 곳을 방문했는데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돈 쓸 줄 안다’는 것. 화려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향유의 기억‘을 소환해 냈다. 난개발이 아니라 난 개발. 부러운 역량이다.
‘발틱 베케이션’의 허브를 라트비아 리가로 할지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할지 고민스럽게 만들었던, 탈린의 매력을 정리해 보았다(한 달 살이에는 물가도 중요하고, 발트 3국의 중앙에 위치해 어디든 갈 수 있는 라트비아 리가를 ‘발틱 베케이션’의 허브로 정함).
역 주변 창고지대를 탈바꿈한 텔레스키비는 탈린에서 가장 힙한 지구가 되었다. ‘삶을 재밌게 하는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미슐랭 그린스타 레스토랑이 있어 먹어 보았다. 원재료의 맛을 살리면서도 감칠맛이 있어 일행 모두 감탄했다.
항구의 공장지대를 상업지구로 바꾼 로테르만 지구는 ‘환골탈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곳이다. 소금창고를 건축박물관으로 바꿨는데 에스토니아의 리모델링 역량을 과시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로테리만 지구의 갤러리 카페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두 곳을 돌아다니다 올드시티에 가면 뭔가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전에는 마냥 좋기만 했는데 화석화된 과거를 파는 느낌? 암튼 탈린은 올드시티와 뉴시티를 두루 만끽할 수 있는 곳. 누가 자본주의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탈린을 보게 하라?
마지막으로 가본 곳은 노블레스니 지구다. 잠수함 조선소를 비롯해 조선소 지역이던 이곳은 다른 두 곳처럼 아직 방문자가 많지는 않지만 기대되는 곳이다. 교도소를 개조한 클럽에 가보았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제법 북적이는 듯.
세 곳의 도시재생 지구는 특히 밤에 좋았다. 도시의 색깔이 다양해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탈린은 구소련의 흔적을 거의 볼 수 없는 도시다. 가장 빨리 러시아를 지우는 도시이기도 하다. 5박 하는 동안 러시아 끼릴문자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도시가 성큼성큼 발전하는 모습이 궁금한 사람에겐, 탈린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