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캬비크, 아큐레이리, 이사피오르드
다섯 번째 크루즈였다. 이번 크루즈 여행의 목적지는 아이슬란드와 스코틀랜드. 이번에 기항하는 아이슬란드와 스코틀랜드(셰틀랜드 섬이 포함되어 있다) 기항지는 크루즈가 아니면 도저히 선을 그어볼 수 없는 여행지다.
크루즈여행에서 ‘호화’인지 여부는 관심 밖이다. 염두에 두는 것은 ‘유용한 교통편인가’ ‘물가보다 나은 방식인가’ ‘여행의 수고를 많이 덜어주는가’ 여부다. 이 세 가지에서 이점을 보이면 과감히 크루즈에 배팅한다.
가보지 않은 아이슬란드를, 렌터카 여러 대를 빌려, 단체 여행으로 조직하는 것은 너무나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크루즈가 핵심 항구로 데려다주면 이런 단체 여행도 가능하다.
아이슬란드는 물가가 비싼 곳이다. 돈을 제법 써도 흡족한 숙소와 맛있는 식사를 하기 힘들다. 하지만 크루즈는 일정 수준 이상의 숙식을 보장한다. 이런 가성비 안 좋은 여행지에는 크루즈가 딱이다.
여행기획이란 결국 ‘데려다 놓는 일’로 요약된다. 데려다 놓으면 여행지가 알아서 하는 여행이 좋은 여행이다. 마찬가지로 크루즈는 태우는 일이다. 태우면 나머지는 크루즈가 알아서 한다. 이번 크루즈도 태우는 것으로 절반은 끝.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 멤버들과 계절에 한 번씩 크루즈 방식으로 대자연 기행을 해보려고 한다. 다음 노리는 크루즈는 알래스카 대자연 기행. 여기도 크루즈 말고는 답이 없는 곳)
1> 레이캬비크 주변 골든링 코스
유럽 포스 중 으뜸이라는 굴포스에 아이슬란드 대자연기행 1일 차에 들렀다. 레이캬비크 인근을 도는 골든링코스의 핵심 여행지다. 크루즈 선사의 기항지투어는 300달러 안팎인데, 이전 여행에 여행PD로 선임한 ‘알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 멤버분이 10만 원짜리를 찾아냈다.
300달러짜리 투어와 10만 원짜리 투어의 차이는 샌드위치와 생수 제공 여부. 알아듣거나 말거나 제 흥에 겨워 떠드는 가이드는 둘 다 같고. 크루즈에서 아침식사 후 각자 요기될만한 것을 챙겼다. 덕분에 소시지 하나 박아 넣은 샌드위치를 삼만 원 받는다는 아이슬란드의 사악한 점심지옥은 피했다.
반나절 정도 돌아본 소감은, 아이슬란드에 왔는데 캄차카가 그리워진다는 것. 아이슬란드가 순한 맛 황량미라면 캄차카는 거친 맛 황량미. 황량미는 거칠어야 맛이 아닐까?
순한 맛 황량미 중 백미는 굴포스인 듯. 아프리카 빅토리아 폭포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만 떼어 놓은 듯. 웅장하면서도 박력 있고 역동적이면서도 장엄하다. 폭포 위와 아래 두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게 좋았다. 아이슬란드의 우중충한 날씨를 걱정반 기대반 예상했는데, 너무 쾌청해서 좋았다. 길 가의 들꽃도 만발하고. 순한 맛 아이슬란드의 진면목을 보았다.
간헐천 지대인 게이시르는 트레킹으로도 매력적인 곳이었다. 모두들 간헐천 터지는 것만 기다리고 있을 때 게이시르의 언덕을 사뿐사뿐 올라가 보았다. 언덕길도 좋았지만 언덕 너머에 그림 같은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서 탄성을 내질렀다. 게이시르 언덕을 에둘러 가는 트레킹도 정말 멋질 것 같았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의 호반길도 매력적이었다. 습지와 호수가 원시 느낌을 주었는데 물이 맑았다. 호수 속에도 암반 지형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다이빙을 하면서 수면 아래를 관찰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호반에서 각자 내키는 대로 자유 트레킹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이사피오르드
이사피오르드의 피오르드 크래바스(횡산길)를 걸어보고 돌로미테 트레킹 다음에 걸을 트레킹 코스에 대한 답을 하나 얻었다. 걷는 행복이 너무나 큰길이었다.
돌로미테 트레킹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그다음에 제시할 수 있는 곳은? 그동안 생각했던 답은 알프스 트레킹(몽블랑, 마터호른, 융프라후), 히말라야 트레킹(안나푸르나, 랑탕, 마차푸차레/마르디히말)과 노르웨이 뉴질랜드 그리고 파타고니아 정도였다.
여기에 답이 하나 더 늘었다. 아이슬란드다. 이맘때의 아이슬란드는 걷는 자에게 최고의 행복감을 선사할 수 있는 곳이다. 간헐천으로 알려진 게이시르에서 이 생각을 얼핏 해보았고 오늘 이사피오르드에서 굳혔다.
피오르드를 따라 언덕의 옆 사면을 따라 걷는 길인데 밸리 지형을 걷는 랑탕트레킹과 유사했다. 랑탕에서는 간혹 계곡이 보일 정도였지만 피오르드 사이의 바다를 보며 걷는 길이라 훨씬 개활감이 있었다.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는 트레킹의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할 수 있는 곳이다. 이사피오르드 트레킹은 부두에서 만의 중심부로 에둘러 가는 길 만으로도 충분했다. 멀리 있는 설산이 바다 반대쪽에 있어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 몽환적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아이슬란드 트레킹도 비슷한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황량한데, 가까이서 보면 너무나 아름답다. 그저 황량한 곳일 줄 알았는데 식생이 너무나 다채롭다.
3> 아큐레이리 주변
아이슬란드 관광 물가 최고봉, 아쿠레이리. 애증이 엇갈리는 곳이다. 아이슬란드 관광 물가 중 아쿠레이리의 바가지가 가장 심한 것 같다. 비슷한 여행 일정 비용이 레이캬비크의 두 배 정도 된다. 경쟁이 치열한 레이캬비크에서는 나름 리즈너블 해서 갈만 한데, 아쿠레이리에서는 좀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폭포와 간헐천과 호수 등을 도는 비슷한 일정의 단체버스 데이투어가 레이캬비크에서는 10만 원 남짓인데, 아쿠레이리에서는 30만 원 정도 한다. 물론 점심 샌드위치를 주고 유료 온천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차이다. 이동 거리와 투어 시간은 레이캬비크 쪽이 더 길었다.
문제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택시를 대절해도 비슷한 비용이다(하루 대절료가 100만 원 정도). 현지 투어도 얼추 비슷한 가격을 받는다(크루즈 기항지 투어는 훨씬 비싸고). 좋게 말하면 협업이 잘 되는 도시라 할 수 있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비싸게 받으니.
그래도 아쿠에이리는 빠뜨릴 수 없는 도시다. 피오르드 사이에 갈고리처럼 삐져나온 만을 중심으로 항구가 형성되었는데 너무나 예쁘다. 마침 날씨까지 좋아서 아이슬란드에서 꼭 보고 싶었던 풍광을 만끽할 수 있었다. 레이캬비크와 마찬가지로 하루 동안 돌아볼 수 있는 거리에 폭포/호수/간헐천이 두루 포진하고 있어서 관광 효율이 좋은 것이다. 비싸서 탈이지.
미바튼 노천온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가 가본 가장 큰 노천온천이었다. 온천 수영장이 아니라 온천 호수라 부를 만큼 컸는데 옆으로 확장공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온천에서 리조트 수영장처럼 와인과 맥주를 팔았는데 여기서 마신 로컬 비어는 꿀맛이었다.
고다포스도 굴포스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아이슬란드 폭포의 매력은 어프로치를 매력적으로 이끌어 준다는 점인데 고다포스는 폭포 바로 아래까지 어프로치를 허용했다. 처음엔 위압적이지만 보다 보면 어머니의 자궁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위태로운 안정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관광버스는 미바튼 온천 너머 간헐천 제대로 이끌어 주었는데 트레킹 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미바튼 온천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간헐천 지역이 나오는데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간헐천과 멀리 보이는 설산이 절묘한 대조를 이뤘다.
시내로 돌아와서 보니 아쿠레이리 역시 이사피오르드처럼 도심 위로 트레킹로가 나 있었다. 트레킹로를 따라가면 끝에 규모가 큰 한증막이 있었는데, 그렇게 데이 트레킹을 즐기고 한증막에서 피로를 풀고 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이슬란드 대구 맛에 반해 해산물 전문식당이 있으면 가보려고 했는데 찾지 못했다. 항구의 규모는 큰데 어항이 아닌 것 같았다. 이사피오르드에서 보았던 어선이 아쿠에이리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자연산 홍합(섭)처럼 큰 아이슬란드 홍합을 맛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아이슬란드 마지막 일정이라 일행이 항구를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고 있기에 합류했다. 시티센터에 있는 카페에 로컬 맥주를 팔고 있기에 막잔으로 한 잔 하며 아이슬란드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고 배에 올랐다.
@ 아이슬란드 맛집
아이슬란드에 맛집이 있을 리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나라 음식을 먹어주는 것은 여행자의 의무라는 생각에, 속은 셈 치고 들렀다. 크루즈에 가면 음식이 지천인데, 굳이 돈 들여서 맛없는 음식을 먹게 하는가, 싸지도 않은데,라는 타박을 들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기우였다. 대구 수프, 대구구이, 대구 크림 찜, 대구살 으깬 무침, 대구 칠리구이. 대구로만 만든 음식이 다섯 가지였는데 하나도 질리지 않았다. 가자미와 광어 등 다른 생선으로 만든 음식도 훌륭했다. 투뿔 소고기를 안심, 등심, 안창살, 갈빗살, 제비추리 등등 두루 먹어보는 기분이랄까.
두꺼운 팬에 조리해서 불에서 바로 서빙하는 것도 좋았다. 싱싱한 해산물을 생생하게 서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집에 가보고 난 뒤 기회가 되면 다른 도시에서도 아이슬란드산 해산물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나라 섭에 해당하는 자연산 홍합과 대합보다 더 큰 조개가 궁금하다.
슈퍼에서는 말린 대구살을 샀다. 우리나라 말린 대구와의 차이라면 염도가 없다는 점. 날씨가 추워서 소금을 뿌리지 않고 말려도 되는 듯. 아니면 동결건조 시켰거나. 침에 살살 불려 먹으면 묘한 감칠맛이 났다.
슈퍼에서 말린 대구를 사서 나오는데 옆 건물에서 건조한 해산물을 판다는 빌딩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순박한 아이슬란드 총각이 나와서 가업으로 하고 있다며 이런저런 건해산물을 보여주었다. 러시아였다면 보드카를 함께 팔았을 텐데 와인을 팔고 있었다. 소량 포장된 건해산물 두 개를 5유로에 사고 와인을 한 병 사서 해변에서 마셨다. 좋은 궁합.
말린 대구는 유용했다.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동결건조 국에 넣으면 제대로 왕건이가 되어 주었다. 라면에 넣어 먹어도 맛나고. 북어버터구이처럼 볶아먹고 싶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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