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처음 서울에 왔다. 서울집(이라기보다는 방)은 이런 형태의 원룸이었다. ‘누나의 집(방)’이었다. 누나는 럭키금성 공장에 다니고 있었고, 간판가게에서 일하다 간판 달다 4층에서 떨어진 형이 퇴원해서 요양 중이었고, 그 형을 돌보러 어머니가 시골에서 올라왔고, 그 어머니를 따라 나도 방학 때 이런 집(방)에 들렀다.
그 집(방)은 영등포시장 언저리였던 것 같다. 거기서 친해진 친구를 따라서 집에 갔는데 분냄새가 심하고 조명이 불그죽죽한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영등포역 앞 유곽이었던 것 같다. 그 친구네 엄마는 유곽에 숟가락을 얹고 살았을 것이고.
40여 년 만에 기억 속 ‘누나의 집(방)’을 다시 보았다. 재작년 청년 예술가들의 공연을 넣어 연출한 ‘금천 도시 역사 투어’에 참가했다가 ‘금천 순이의 집’에 복원한 이 방들을 보았다. 물질하는 해녀의 일을 말할 때,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고 했는데, 저 방들은 누나들의 저승이었을 것이다.
누나는 신경숙이 아니라서 쪽방의 기억을 소설로 쓰지 못했다. 누나는 심상정이 아니라서 노동자 체험을 바탕으로 정치인이 되지도 못했다. 그래도 누나는 ‘어른의 여행클럽, <월간 고재열>’의 최고 후원자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면서 근처에서 챙기고 있는 사람도 누나고.
지켜보면 확실히 효도도 손발이 부지런한 사람이 하는 것 같다. 요양병원의 엄마를 챙기는 것도 누나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같이 간다. 늘 누나는 쉬지 않는다. 일도 쉬지 않고 생각도 쉬지 않는다. 일을 마치면 주변을 챙기고. 누나가 시누이 입장에서 야무지게 중재를 해서 명절/제사 모임도 단출해졌다.
저 작은 방에서 여공 5~6명이 생활했다고 한다. 근무조가 달라서 낮에 자야 하는 사람과 밤에 자야 하는 사람이 함께 방을 써서 효율을 기했다고. 하지만 화장실을 공용으로 써야 해서 아침마다 줄이 장사진이었다고. 아마 누나도 저곳을 빠져나와 어렵게 독립해서 방을 얻었을 것이다.
누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벌면서 다녔다. 그다지 공부에 소질도 없는 아들들은 당연히 고등학교를 보내주면서도 우등생 딸에는 무심한 아부지를 원망하면서 누나는 마산의 한일여실고에 진학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바로 공장에 갔다.
대학에 갈 수 있는 형편이었다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누나는 결혼 후 육아를 할 때 라디오 퀴즈에 자주 응모했는데 조금 과장해서 방 하나를 상품으로 채울 정도로 많이 받았다. 군대 때문에 가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상품으로 받은 ‘하와이 여행권’을 주기도 했다.
금천문화재단에서 여공들의 방을 복원하면서 방 하나하나에 여공들의 꿈을 담았다고 한다. 그 꿈 하나하나가 아렸다. 존중받고 응원받기보다는 무시당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어느 라디오에선가 그들의 사연을 들려주었을 것이고…
그때 누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1984년 여름 방학 때 누나는 나를 데리고 연극을 보러 갔을 때 기억이 난다. 제목이 <하얀 원숭이와 까만 당나귀>였던가? 물론 나는 만화영화를 보여달라고 졸랐었다. 누나는 연극을 많이 보았다.
돌이켜보니 누나에게 가족은 언제나 '혹'이었지 '트로피'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도 그렇고. 멀쩡히 기자생활 하다가 '시사저널 파업'에 나섰을 때 나또한 누나의 '혹'이었던 것 같다. 파업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생활고도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한 퀴즈프로그램에 나가 우승하고 상금 2000만원을 받았는데 그때 누나도 응원 왔었다. 그 순간은 누나에게 내가 '트로피'였을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누나의 집(방)'은 이제 낙낙해졌다. 누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서울집의 흐름을 잘 읽어내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두 자녀를 결혼할 때부터 집을 사서 출발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조그만 '누나의 집(방)'이 나름 저택이 된 셈이다.
어린 여공들이 숙소로 쓰던 벌집촌은 이제 중국인 노동자들의 숙소가 되었고 여공들이 큰맘 먹고 떡볶이와 순대를 사 먹던 가리봉시장은 중국 식료품을 파는 시장이 되었다. 거리의 주인이 이렇게 바뀌고 있는데 금천구는 이 쇠락한 거리를 청년들의 상상력 발전소로 만들겠다며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있다.
금천문화재단에서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구로공단 여공을 모티브로 한 ‘도시 역사 투어’에서 더듬어 본 과거의 기억이다. 도슨트를 따라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누나의 방’을 기억하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 방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떤 방에서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