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놈들 속 좁다’라는 말이 있다. 기자라는 직업을 20년 동안 해오면서 늘 염두에 두던 말이다. 지금 그 말을 증명해 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윤석열이다. 나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남에 대해서는 철저한 모습. ‘빤스런’이 아닌 ‘빤스눕’으로 땡깡을 부리는 걸 보면, 서울 법대, 검찰총장, 대통령... 이런 수식어가 얼마나 허상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여행클럽을 구축할 때도 이를 유념하고 있다. 사람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 때는 관계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속 좁은 사람들은 밸런스를 깨곤 한다. 티끌만 한 이득이라도 먼저 챙기려는 사람이 본색을 쉽게 드러내는 모임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특별히 조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 이 네 가지는 인간관계의 독이다. 독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독이다. 이걸 가진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독이 든 성배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젠가 이들의 독에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독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된다. 이들을 만나는 일은 제법 유쾌하고 만나고 나면 내가 이런 사람과 만나다니, 하는 생각에 포만감도 느껴진다.
하지만 가까워지면 왠지 피곤해진다. 이들의 자기 중심성 때문이다. 은연중에 자신에게 맞춰줄 것을 기대/강요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도 이 사람에게 맞춰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된 배려에, 권리인 줄 알고 이걸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배려는 ‘권리’이기 때문에 고마움을 모른다. 이 ‘권리’가 충족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반상의 구분이 명확하다. 배려를 받아야 할 사람과 배려를 해야 할 사람으로. 그들은 쉽게 사람의 격을 나눈다. 그래서 격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쉽게 내친다. ‘분 바른 것들에게 정 주지 말라’는 게 아마 이 의미였을 것 같다. 금배지 단 것들, 훈장 단 것들도 마찬가지고.
돌이켜보니 이 네 가지를 가진 사람 중에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은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빠져나온 분들이다. 말하자면 해독이 된 분들이다. 부/명예/권력/인기를 갖지 않았어도 자기 중심성이 강한 사람과는 결국 멀어지게 된다. 이런 사람은, 그냥 지나 보내야 하는 바람 같은 존재다.
여행클럽에 새로 가입하려는 사람 중에 부/명예/권력/인기를 가지고 있거나 가졌던 사람이 보이면 조금 경계한다. 그래서 그들이 다가오면 '여기서는 특권을 기대할 수 없다'는 신호를 주는 것으로 살짝 허들을 둔다. 그 허들을 넘어서 동등하게 어울릴 줄 아는 사람과 함께 여행한다.
서비스업의 핵심은 맞춰주는 노력이 아니라 자기 서비스에 맞는 사람을 찾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서로 행복하고 그래야 오래간다. 여행사 할 것도 아니고 여행감독으로서 여행클럽 멤버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라, 결이 맞는 사람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기획하는 여행은 이렇다,라는 것을 선명하게 해줘야 한다. '정명' 즉 이름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여행에 정답은 없겠지만, 여러 여행의 답 중에 내가 풀어내는 답은 이것이라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 그런 답을 선호하는 사람이 와야 서로의 여행이 행복하다.
그리고 여행에서는 '관계의 온도'에 대해서도 신경을 쓴다. 같은 곳에서 자고 삼시 세끼 같이 먹으니 친해진 느낌이지만 그것은 롯데자이언츠 응원석에서 함께 응원한 것 정도의 친밀감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여행지라는 낯선 곳에서 잠시 서로 의지했을 뿐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은 ‘인맥’이 아니라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맺어주려는 것이 인맥이 아니라 인연이기 때문에 부/명예/권력/인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미련이 없다. 그런 사람에게 배려하느라 내 에너지를 낭비할 생각도 없고.
현대인에게 필요한 여행에서의 관계는 ‘간섭하지 않는 결속력’과 ‘선을 넘지 않는 배려’다. 이를 위해 관계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누가 일방적으로 희생해서도 안 되고 누가 일방적으로 배려를 받아서도 안 된다. 서로가 배려받는다고 생각하는 만큼 자기희생을 하는 것이 적당하다.
윤석열을 보고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여행클럽에서 좌우를 나눌 필요가 없겠지만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몰상식과는 선을 그어야겠다는 정치적 마지노선이다. 게엄을 계몽령이라 하고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과의 여행이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좌우는 나누지 않더라도 상식과 몰상식은 나누자고.
감옥에서 용쓰는 윤석열을 보고 만감이 교차해 그냥 끄적거려 보았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그런 사람을 가려주는 게이트 키퍼 역할을 여행감독이 해야 한다. 사소한 원망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여행감독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