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 가운데 누군가는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가까웠는데 멀어져 가고, 심지어 배반도 한다. 매우 심각한 경우도 있고, 은근히 마음에 짐이 되는 일도 있다.
조선 시대 강희맹(1424-1483)의 일화가 인상에 남는다. 그는 세종부터 성종 대까지 6대에 걸쳐 관직을 지낸 당대의 대표적인 문신이며 최고의 문장가였다. 글씨와 그림에도 매우 능한 인물이었다.
어느 날 생원 이원좌라는 이름으로 강희맹을 지목한 투서가 날아들었다.
키 작고 배는 불룩한데, 뱃속에 탐욕이 가득 찼으며, 뇌물이 구름같이 모였다.
조선시대에 관료는 사실여부를 떠나 일단 탄핵을 받으면 스스로 사직하고 근신하는 것이 관례였다. 조사해 보니 이원좌는 가공의 인물이었고, 국왕 성종은 사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희맹은 관례대로 사직을 청하였다. 강희맹은 사직서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를 말[馬]이라고 부르면 내가 말로 응하고, 나를 소[牛]라고 부르면 내가 소로 응하더라도, 내가 실제로 소나 말이 아니니, 나를 부르는 사람이 망령된 것일 뿐입니다. 나에게 무슨 손해가 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헛된 말을 날조하여 저를 비방하는 것도 마치 바람을 붙잡고 그림자를 묶는 것처럼 헛된 것이니, 한갓 웃음거리일 뿐입니다(1478(성종 9)년 7월 14일).
강희맹의 말처럼 혹시 누가 나를 소라고 부른 들, 말이라고 부른 들 그 사람이 망령된 사람일 뿐이다. 그저 나로 있을 뿐, 달리 무슨 방도가 있을까.
중국 한나라 경제(재위 BC. 188-141) 때 어사대부라는 관직에 있던 직불의(BC.?-138)라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직불의가 형수와 사통 했다고 모함하였다. 직불의는 다른 변명 없이 한 마디만을 했다.
“나는 형이 없다.”
강희맹의 말처럼 누가 나를 무엇이라고 해도, 내가 그로 인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직불의의 처신이 보여주듯, 설사 해명해도 정작 들어줄 귀를 갖고 있지도 않기 일쑤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릴 필요 없이, 나는 나로 존재하면 된다.
다양한 사람과 온갖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출발점은 “나”이다. ‘나 다운 나 자신’이 다른 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내 삶의 출발점이다. 그 출발이 흔들리고 뒤죽박죽이 되면, 그 노력은 바람을 붙잡으러 돌아다니고, 그림자를 묶어 보려는 헛된 짓을 하는 격이다.
그림 : 《엄마의 담장》, 2023, 19쪽 그림. 사랑하는 내 강아지, 수리를 그리며.
글 : 《슬픔도 미움도 아픔도 오후엔 갤 거야》, 2021, 130-133쪽 일부 수정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