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과부, 말 그대로 푸르른 청춘에 혼자된 여인. 내 엄마도 그렇다.
그때 엄마는 이십 대 중반을 갓 넘었고, 나는 7개월이었다.
어찌 내 엄마만의 이야기일까.
아, 슬프다.
나와 그대가 장인 사위가 된 지 겨우 4년이니, 아, 그 기간이 매우 짧았네.
저 푸른 하늘은 무엇 때문에 이토록 잔인하단 말인가.
송준길(1606-1672)이 일찍 간 사위에게 고한 제문의 일부다.
그의 딸이 4년 만이었다면, 내 엄마는 5년이 채 안된 어느 날 밤에 갑자기 혼자되었다.
미망인이 된 딸자식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 이 청상과부가 불쌍하네. 세상에는 팔자가 기박한 사람이 한없이 많지만 그 비통이 내 딸아이처럼 심한 사람은 없을 것이네.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고 여기고 있는 저 아이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네만, 그래도 몸 보존하기를 바라는 것은 부녀간의 지극한 정 때문이네.
천지는 다할 때가 있지만 이 원통은 다할 날이 없을 것이네.
너무나 슬퍼서 한 글자를 쓸 때마다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니 제대로 글을 지을 수 없었네.
청상과부가 된 딸을 안타까워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절절이 드러난다.
갑자기 혼자가 된 내 엄마의 ‘기박한 팔자’도 오죽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어 저 글의 여인처럼 비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외삼촌은 몸이 마른나무가지처럼 말라 바람에 꺾여버릴 것 같이 된 엄마를 차마 바라보기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살 길을 찾아 백방으로 노력한 엄마는 다행히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친정 엄마인 외할머니가 살림을 맡아주어 살아낼 수 있었다. 먹고사는 문제야 해결되었다고 하지만, 그 세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꽃다운 나이에 혼자된 엄마가 이제는 호호백발노인이다. 언제 어디서나 가장 꼿꼿한 자세를 지녔던 엄마는 등이 굽어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다. 하지만 조곤조곤한 말투와 치아가 조금 보일 정도로 건네는 잔잔한 미소는 여전하다.
엄마는 평생 지고 왔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주변을 정리하고 평안 가운데 기도와 독서로 남은 날을 보내고 계시다. 모쪼록 치매나 큰 중병에 걸리지 않고 조용히 떠나기를 소망하며 매일매일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나도 흰머리가 솟아난 나이가 되버렸지만 엄마가 안 계신 내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엄마를 생각하면 목젖까지 뜨거움이 올라온다. 꿀꺽 삼키며 엄마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엄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인용문 출처
송준길 문집, 『동춘당집』 17, 「사위 나명좌(羅明佐)에게 고하는 제문」(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