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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독자님 전상서

by SeonChoi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갈수록 줄어듭니다. 직장을 떠나면서 대폭 정리했고, 이런저런 사회활동을 줄이면서 또 정리했습니다. 인구가 80억을 훌쩍 넘어섰고, 지구는 마치 유기체 같아서, 모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이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서 들이마신 공기, 식탁 위 음식, 편안한 옷, 책꽂이에 책들... 그 모든 삶의 자리에 다른 사람의 삶이 들어와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소통하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얼굴도 이름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만 제 삶에 귀중한 의미를 선사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바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입니다. 이곳에 들어와 읽어 주시고, 라이킷을 눌러주시고, 시간내어 댓글까지 주시는 분들, 만난 일도 없는 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특히, 종이책을 내 놓고는 더 생각이 많았습니다. 나무만 파괴하고 종이만 낭비한 것이 아닌가 의기소침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 제 책을 대출했음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 어쩌면 좋을까요. 얼마나 감사한지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한국사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해 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캐나다 땅에서 갑자기 많은 활동이 어려워졌습니다(캐나다는 당시 통제가 한국보다 심했었습니다). 사지를 묶인 듯 꼼짝달싹도 못하는 상황에 갑자기 비어진 시간이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 시간을 이겨내며 삶을 풀어내고 싶은 마음에, 전공 논문에서 벗어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에세이로 시작해, 소설을 3편 출간했습니다.


사실 대학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며 고기가 물을 만났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소설을 좋아해 내로라하면 서러울 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지, 쓸 생각은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뒤늦게 만난 이 물이 제가 놀아야 했던 물이 아니었나(?) 할 정도로 여기가 좋습니다.


하지만 일전에 올린 글처럼 저는 그저 방구석 무명작가와도 같습니다. 그렇다해도 논문에서 소설로 평생 써 왔던 글의 내용이 조금 달라졌을 뿐, 여전히 글을 쓰는 활동은 다른 작가님들처럼 제 삶 자체입니다. 브런치에 소소하게 제 생각을 올리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삶의 한 조각입니다.


가끔은 혼자 의기소침해집니다. 깊이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세상에 내놓은 내 문장이 무슨 의미일까....

늘 다니는 동네 도서관에 제 소설이 들어왔습니다. 가끔 보면 누군가 대출했습니다. 얼마나 화들짝 놀라고, 긴장이 되는지 모릅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고 있음이 전공논문 심사를 받을 때처럼 긴장됩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합니다.


부디 읽어주시는 그 귀한 시간에 제 글이 의미가 있기를 손톱을 물어뜯고,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바라고 소망합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독자에게 마음으로 덥석 손을 잡으며 감사인사 드립니다.

여기 들어와 제 글을 읽어주시는 작가님들께도 깊은 감사 올립니다. 제 삶에 큰 격려와 의미를 던져 주신 이 시간이 작가님들께도 의미 있는 읽기 시간이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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