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소통의 빈도와 관계

by SeonChoi

공중전화 통화제한 시간 3분, 기다리면 너무 길고, 통화하면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사춘기 무렵부터 나의 언행에 대해 초고성능 레이다 망을 작동 중인 할머니를 피해 집전화를 놔두고 공중전화로 가곤 하였다. 연락수단이라고는 집 전화와 손 편지만 있던 대학 시절, 만나고 헤어질 때 미리 다음 약속을 해 두는 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혹여 약속시간에 늦으면, 제발 가지 않고 기다려주기만을 바라며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거꾸로 상대방이 늦어도 시계만 들여다 보며 몇 분까지 더 기다릴까를 결정하고, 늦추고, 다시 결정하고를 반복했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에게 소통의 수단은 서신이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거주하는 지방도 다르고 오가는 인편도 여의치 않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간 서신에는 곡진하게 안부를 물으며 서로에 대한 존경, 그리움이 절절하게 담겨있다.


몹시 그리워하던 중에 문안해 주신 편지를 받으니 마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아 기쁨을 형언할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앓고 있는 눈병이 봄에 들어 더욱 심해졌다고 하니 매우 염려됩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제때에 치료하시어 조속히 나으시기를 천만 기원합니다. (이현일이 신명중에게 보낸 답장, 1701년)


강물에 막히고 멀어 그리운 마음 간절하였는데, 뜻밖에 귀한 편지를 받고 뜯어서 읽어 보니 기쁘고 위안이 됩니다...만나서 회포를 풀어 이 가슴에 가득 쌓인 티끌을 씻어 내고 싶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만날 기약이 없어, 인편을 통하여 답장을 쓰자니 그리운 마음만 간절합니다.(이현일이 권충경에게 보낸 답장, 1685)


얼마나 간절하고 애틋한 그리움의 표현인가! '편지를 받고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고 하고, '며칠을 손에서 놓지 못하였다'는 표현도 많이 나온다.


서신은 학문적 소통의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였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13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리학의 핵심 개념에 대해 논쟁을 전개해 간 사실은 일반에게도 제법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유학자들은 서신은 통해 시를 주고받고, 여러 유교 경전에 대한 변론과 해석, 성리학의 기본 개념에 대한 논쟁 등을 나누었다.


인편이 잇달아 왔는데 편지의 말씀이 정중하여 베푸신 은혜가 매우 크니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저와 편지를 왕복하며 토론해서 정정하려고 하시니 현자께서 겸허하게 묻기를 좋아하는 뜻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이현일이 원성부에게 답장을 보내며 남효온이 《중용장구》를 변론한 것에 대한 의견을 논하다)


별지(別紙)를 통해 물으신 '사단칠정론'에 관한 것을 이제야 조목조목 써서 올리니 살펴보시고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서신을 통해 다른 이의 학설과 해석에 대해 논리와 의미를 따지고, 사용한 글자의 뜻을 해석하며 학문적 교류를 이어갔다. 또한 서체는 인격과 인품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이 역시 선비들 사이에는 중요한 문화적 매개체였다.


석사과정에 있을 때 엄격하고 강도 높은 세미나 수업에서 주눅이 들고 조심되는 우선적인 문제도 글씨체였다. 박사과정 이후로는 달라졌지만, 그 시절만 해도 손으로 작성한 발표문을 나누어 보며 몇 시간에 걸친 토론수업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지도교수님은 발표문을 받으면 의례 서체에 대한 촌평을 하시곤 했다. 사정에 따라 급하게 쓴 ‘날림체’글씨를 보면 준엄한 질책이 이어지곤 했다.


2021년, 지금은 약속하나에도 너무나도 많은 연락이 오간다. 문자, 이모티콘, 통화 등 여러 수단이 동원된다. 만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연락이 오간다. 현재 지하철 정류장 어디를 통과하고 있는지부터, 계단을 올라가며 5분 이내에 도착한다는 등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소통이 이루어진다. 연인이면 아마 그렇게 만난 뒤 각자 돌아가서도 깊이 잠들기 직전까지 소통이 진행될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고, 중독처럼 익숙해있다.


오래 만난 사이도 간단한 메모를 주고받는 경우는 있지만, 막상 필체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연인이나 친구라 해도 감정이나 성격이 담겨있다는 손글씨를 접할 기회가 드물다. 어쩌면 매우 잦지만, 상당히 무미건조한 소통을 나누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통의 빈도만큼 현대인은 서로에게 더 가까워진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이 잦은 소통은 현대인의 여러 인간관계에 무슨 의미일까.

이제 예전만큼 여러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능력이나 집중력이 현저히 저하되었음을 느낀다. 고즈넉하게 즐기는 독서와 산책, 그리고 생각의 집중을 위해 단순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자연히 이른바 '인맥 다이어트'를 하며 소통의 빈도도 줄였다. 하지만 여전히 곁에 있는 이들과의 소통의 깊이는 손편지 만큼이나 정성스럽고 진지하게 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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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시계의 설렘>


시계는 잘 맞아.

아직 시간이 안 되었을 뿐이야.

설렘을 누르며

조금만 더 기다려보렴.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그가 성큼성큼 걸어 올 터이니...


※ 인용문 출처 : 《갈암집》10권, 13권.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 DB.

《갈암집》을 남긴 이현일(1627~1704)은 조선시대의 재상의 지위에 오른 문신이며 학자이다. 그는 성리학에 있어서 이황을 지지하고, 이이의 학설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 글의 편의상 인용문은 필자가 조금 쉽게 수정 서술하였다.


글/그림 Se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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