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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Jan 08. 2024

쓴 약

- 귀가 열린 사람이 먹는 약 -

  익명의 3인,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그들이 보내온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연다. 물론 발신자는 논문을 투고한 학회다. 몇 백번을 겪어도 잠시의 긴장은 늘 있다. 진지하게 쓴 약을 먹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논리 전개를 짚어보고, 문장을 다듬고, 인용한 원문도 확인해서 논문을 투고했다. 국가가 정한 A등급 학술지에 게재하려면  세 명의 익명 심사위원이 작성한 <심사서>에 ‘게재’를 판정받아야 한다.      


  <심사서>에는 등급을 판단해 게재 여부를 결정한 심사 + 같은 연구자로서 건넨 조언이라는 두 가지가 담겨있다. 학술지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대개 <게재 - 수정 후 게재 - 수정 후 재심사 - 게재불가>로 등급을 나눈다. 일단 등급부터 확인한 뒤, 심사서를 정독한다.     


  증명할 수 없지만 매번 비슷하게 적용되는 <3인 심사서>의 법칙이 있다. 나만의 경우가 아니라 동료들도 입을 모아 그렇다고 한다.

※  심사위원 1 - 정말 성의 있게 작성한 심사서.  대개 수정 후 게재. 논평 내용 잘 수용해서 수정해 달라는 의미. (-> 정말 감사합니다. 꼼꼼하게 검토해 잘 수정 보완하겠습니다.)     


※  심사위원 2 - 심사를 맡았지만 귀찮음. 등급은 대개 게재. 당신 논문이니 학자로서 당신이 책임지라는뜻. (-> 품앗이하시는 그 심정 충분히 압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심사위원 3 - 다른 견해를 틀린 견해로 간주. 학설의 다름을 언짢아함. 대개 짧게 씀. 수정 후 재심사 내지 게재불가. (->정설처럼 굳어진 학설을 따르려면 연구가 왜 필요합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학술논문으로 완성도가 떨어져 게재불가 받은 경우는 논외)     


   가끔 다른 주장, 다른 해석이라는 이유를 게재 불가의 판정이 내려지기도 한다. 다른 의견이 틀린 의견으로 간주된 경우다. 나도 초창기 때 학계 원로의 학설과 그를 따르는 많은 학자들과 다른 주장을 펼친 논문을 썼다가 게재불가를 받은 일 있다. 심사서에 써진 게재불가 이유는 아무개의 학설과 왜 다르냐는 것이었다(이 뮝미...ㅜ,.ㅜ). 동의하기 힘든 심사평이었지만 처음 쓰는 마음으로 다시 검토해 수정 보완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다른 학술지에 투고해 칭찬받으며 활자화되었다.                


  쓴 약을 한 사발 먹는 것 같은 논문심사라는 과정을 통해 글은 완성도가 더해진다. 어떤 학자의 어느 학설이라도 학문의 세계에서 완벽할 수 없다.  심사위원의 심사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반영하면 논문의 질은 올라간다. 필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콕 집어 지적해 주기도 하고, 겸허히 수용해야 할 비판도 담겨있다. 


  내가 몸담아온 세계는 역사학이지만, 다른 어느 분야라도 마찬가지임이 분명하다. 다른 사람이 보다 우수하거나 완벽해서가 아니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 온전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겸손하다. 다른 이의 의견을 귀담아듣는 사람의 세계는 깊고 탄력적이다.    

  


  알려진 것처럼 조선시대 국왕은 기본적으로 하루에 3번 관료들과 ‘경연’을 가졌다. 숙종과 경연하는 자리에서 문신이며 학자인 이현일(1627-1704)이 한 말이 있다.     


 신이 또 아뢰옵나이다. 

  “충신이 임금을 섬길 때는 그 임금이 현명하지 않을까를 염려합니다. 현명한 군주에게는 그를 위해 충언을 해 줄 수가 있고, 바른 이치로 설득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간신이 임금을 섬길 때는 그 임금이 혹시라도 현명할까 염려합니다. 임금이 현명하면 간사한 계책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간신들은 국왕이 선비를 가까이하지 않고, 역사를 고찰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국왕이 말하였다.  “정말 그러하다.”      


 사실 충신과 간신은 언제나 있다. 둘로 갈려 있는 게 아니라 구분하기 어렵게 뒤섞여 있다. 자신의 이익과 입장에 따라 어제의 충신이 오늘의 간신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가려내는 능력이 최고 권력자의 능력이다. 제갈량(181년~234)이 중국 역사상 지략가로 추앙받기까지는 유비라는 권력자의 안목이 있었다. 


유비의 귀는 제갈량의 입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귀가 꽉 막힌 사람은 말 그대로 ‘소인배 나부랭이’ 일뿐이다.          

주변에 쓴 약을 권하는 '심사위원'이 없다면, 당신이 소인배 나부랭이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제갈량


※ 인용원문출처 :《갈암집》7, 1693년(조선 숙종 19) 5월 18일. 한국고전종합DB. 서술의 편의를 위해 적절히 의역하여 인용.

※ 제갈량(중국어 정체자: 諸葛亮, 181년~234.《삼국지》표지가 너덜너덜하도록 읽은 뒤 아들이 그린 제갈량. 한 십년전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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