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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Jan 30. 2022

미키 마우스와 함께 클래식 음악을

판타지아 (1940)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 대중음악 등에 비해 클래식 음악은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클래식 음악가로서 고민해 보았을 때 먼저 교향곡, 협주곡 등 클래식 곡들의 연주시간이 그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한 곡에 5분 내외면 들을 수 있는 대중음악과 달리 짧게는 20여분부터 길게는 1시간이 넘는 길이의 곡(물론 5분 내외의 곡들도 있지만)을 듣기 위해서는 그 곡을 정말 좋아하거나 아니면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겠죠. 만일 곡을 듣기 시작한 후 계속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곡은 편안한 자장가로 우리를 숙면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그 곡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감상법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가사가 있는 음악이라면 그나마 곡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만, 설령 가사가 있더라도 대부분 외국어인 데다가 가사 자체도 문학적으로 그리 쉽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더군다나 가사도 없이 순 음악만으로 이루어진 1시간짜리 교향곡을 듣는 일은 어느 정도의 수련을 쌓지 않고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나마 이런 어려움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의 시각입니다. 집에서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음악을 연주회장에서 ‘보면서 듣는 것’이 다른 이유입니다. 대중음악도 귀로만 듣는 것보다 그 곡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 감동과 느낌이 더욱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월트 디즈니가 시도한 클래식 음악의 시각화 작업은 너무나도 가치 있는 일입니다. 또한 디즈니가 음악을 시각화하는데 이용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는 청각의 시각화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최고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1940년 월트 디즈니사에서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판타지아, Fantasia>는 쉽게 말하자면 클래식 뮤직 비디오입니다. 처음 디즈니가 이 작품을 구상한 이유는 순전히 미키 마우스의 인기 때문이었습니다. 1928년 세상에 첫 등장한 미키 마우스는 10여 년간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다른 캐릭터인 도널드와 구피가 나오자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맙니다. 이에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해 프랑스 작곡가 폴 뒤카(Paul Dukas)의 관현악곡인 '마법사의 제자 (L'apprenti sorcier)'를 배경으로 미키 마우스가 등장하는 작품을 구상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를 초빙하였는데 이 작업에 흥미를 느낀 스토코프스키는 다른 곡들도 첨가하여 장편 음악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디즈니가 이를 받아들여 7곡을 첨가, 2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판타지아>가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판타지아 중 뒤카 <마법사의 제자>


당시 이 작품을 위해 300만 달러의 거액이 투입되었는데 특히 4만 달러가 투입된 음향시스템은 자그마치 33개의 마이크를 이용한 9개의 독립된 시스템으로 훗날 스테레오 시스템의 원조가 됩니다. 이런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개봉할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인 데다가 대중들은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고 비평가들은 디즈니가 예술을 가르치려 든다며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흥행 참패로 디즈니는 파산 직전까지 가게 되고 한동안 <판타지아>는 세상 속에 잊혀 있다가 30여 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호평과 찬사에 힘입어 1999년 <판타지아 2000>이라는 제목으로 60년 만에 속편이 제작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판타지아>와 속편인 <판타지아 2000>에는 각각 8곡의 클래식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디즈니의 첫 구상작이었던 미키 마우스의 모험물 뒤카의 '마법사의 제자'는 발전된 애니메이션으로 <판타지아 2000>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두 편의 판타지아에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과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등 대중적으로 친숙한 곡들부터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와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등과 같이 귀로만 들으면 어려운 곡들을 상상력 넘치는 애니메이션을 통하여 작품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무엇보다 베토벤의 음악이 디즈니의 만화를 위해 작곡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절묘하게 음악과 잘 어우러지는 애니메이션은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고 길고 지루하게 느꼈더 클래식 음악을 재미있고 신선하게 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동안 클래식 음악이 어렵고 길고 지루하다고 느꼈던 분들은 꼭 한번 감상해 보시길 권하며 특히 아이들의 클래식 음악 입문을 위해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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