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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Feb 15. 2022

리더의 품격

헨리 5세 (1989)

"소수인 우리들, 소수이기에 행복한 우리는 모두 한 형제이다. 오늘 나와 함께 피 흘리는 자는 모두 내 형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한 자라도 오늘 그의 지위가 고결해지리라. 그리고 지금 침대에 있을 영국의 귀족들은 이 자리에 있지 못했던 것을 한탄하리라."


좋은 작품은 항상 우리의 기억에 남고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보아도 항상 그 감동의 여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기억에 남는 책이나 음악, 연극이나 영화 등 자신만의 명작들을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 <헨리 5세>는 저에겐 그런 작품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접한 이 영화는 어린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고 지금도 가끔씩 감상하며 처음의 감동을 되새기는 영화입니다.


1989년 셰익스피어의 동명 원작을 기초로 만든 영화 <헨리 5세>는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의 뛰어난 재능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영국 출신의 유명한 연극배우이기도 한 케네스 브래너는 그의 첫 감독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감독, 각본, 주연을 맡아 그의 특출한 재능을 선보였는데 당시 그의 나이가 29살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으며 그 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5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안 홀름, 쥬디 덴치와 같은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영화 배트맨으로 유명한 크리스천 베일의 어린 모습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처음 케네스 브래너가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하자 많은 이들이 그를 말렸다고 합니다. 1980년대에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흥행 면에서나 여러 가지 면에서 모험이었고 감독으로서 그의 영화 연출 경력이 전무했기 때문이지요. 더불어 로렌스 올리비에가 주연한 1944년작 동명 영화의 명성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부담감에도 32살의 청년은 그에 못지않은 명작을 만들어내고 맙니다.


영화 <헨리 5세>는 케네스 브래너 자신이 뛰어난 연극배우이기 때문에 연극적인 연출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배우들의 대사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거의 따르고 있어서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헨리 5세가 왕위에 오르기 전 방탕하고 방랑자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그가 진정 영국 왕위를 계승할 자질이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그리는 전반부와, 1413년 헨리 4세가 서거하고 왕위에 오른 헨리 5세가 주변의 우려와 달리 매우 뛰어난 지도력을 보이며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덕망을 받는 모습과, 자신이 에드워드 3세의 직계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데에 분노하여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하고 승리하는 후반부로 나뉘는데 영화의 내용은 실제 역사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연극적인 요소를 담아 유명한 고전을 영화로 만들다 보니 자칫 분위기가 무거워지며 지루해질 수 있는데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바로 작곡가 패트릭 도일(Patrick Doyle)의 훌륭한 음악입니다. 1944년작 <헨리 5세>의 음악은 영국의 대 작곡가 월리엄 윌튼이 곡을 썼는데 패트릭 도일도 영화사에 길이 기억될 감동의 사운드트랙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프랑스 군대와의 아진 코트 전투 장면은 최고의 명 장면으로 손꼽힙니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유명한 '성 크리스핀 날의 연설'을 하는 케네스 브래너의 연기는 영화를 보는 이들도 애국심이 불타오르게 할 정도로 매우 인상적이며, 전투가 끝나고 흘러나오는 음악 “논 노비스 도미네”(Non nobis, Domine)는 이 영화의 정점입니다.



‘주께 영광을 돌리세’라는 가사의 중세시대 찬송가로 작곡된 이 곡은 전투를 끝내고 시체더미의 전장 속에서 한 병사의 솔로로 음악이 시작해 여러 병사가 함께하는 중창으로 변하고 거기에 오케스트라가 합세하여 큰 규모의 합창곡으로 진행하여 곡을 끝맺습니다. 이때의 장면은 헨리 5세가 전사한 어린 병사(이 소년이 바로 크리스천 베일입니다)를 업고 치열했던 전장을 가로질러 가는 롱테이크로 보여주는데 영상과 음악이 주는 감동은 이 영화를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패트릭 도일의 모든 음악들은 매우 완성도가 높으며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연주는 2002년부터 2018년까지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였던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녹음입니다.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영국 탄광도시의 작은 악단이었던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25세에 나이에 맡아 19년 동안 지휘자로 재직하며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성장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는 리더를 꿈꾸는 이들은 반드시 한 번쯤은 읽어보아야 할 고전이며, 케네스 브레너의 영화 <헨리 5세>는 원작에 버금가는 좋은 대안이 될 것입니다.  


영화 <헨리 5세> 중 'Non nobis, Domine'

https://youtu.be/Z1GDRx-F1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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