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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Feb 23. 2022

너의 예술 안에서만 살아라

불멸의 연인 (1994)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의 분신…


2005년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작곡가 베토벤의 두개골이 미국에서 발견되었다고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활동했던 베토벤의 유골이 어떻게 미국에서 발견되게 되었을까요? 두개골의 존재를 알린 샌 호세 주립대학 베토벤 연구소에 따르면 베토벤은 1827년 빈에서 사망하여 빈 중앙 묘지에 묻혔고 1863년 무덤의 발굴작업이 이루어졌는데 당시 베토벤의 열성 팬이었던 게하르트 폰 브로이닝이 무덤 발굴 후 두개골을 보관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연구를 위해 의사인 로메오 셀리그만에게 맡겨졌고 그 후 베토벤의 두개골은 셀리그만의 후손들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까지 프랑스에 살고 있던 토마스 데민즈가 보관하고 있었고, 그의 건강이 악화되자 사촌 조카인 미국의 사업가 폴 카우프먼이 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우프먼이 베토벤의 두개골을 샌 호세 주립대학 베토벤 연구소에 영구 임대하면서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학자들은 이 두개골을 통해 베토벤의 죽음과 청력상실의 원인 그리고 괴팍했던 성격의 이유들이 납 중독 때문이었다고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베토벤의 데스마스크

베토벤의 삶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이야깃거리와 의문점을 남깁니다. 그만큼 베토벤의 삶은 그가 남긴 음악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았는데 1994년 영화감독 버나드 로즈 (Bernard Rose)는 베토벤의 삶을 ‘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이라는 제목으로 스크린에 옮깁니다. 이 영화는 1827년 수천 명의 군중들이 모인 베토벤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유품을 정리하던 베토벤의 친구 안톤 쉰들러는 의문의 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의 분신..’으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멸의 연인’에게 베토벤이 모든 유산을 남긴다고 적혀있었고 쉰들러는 친구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을 찾아 나선다는 줄거리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베토벤의 전기영화로는 볼 수 없습니다. 불멸의 연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베토벤의 모습들이 묘사되고는 있지만 전해지는 일화들과 추측들로 드라마틱한 논픽션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오히려 버나드 로즈 감독이 사실을 바탕으로 영화에 맞게 재 해석한 내용들이 더욱 흥미를 자아냅니다. 한 예로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현악사중주 곡들은 그의 교향곡들과 더불어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그중 16번 곡의 자필 악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꼭 그래야만 하나?", "반드시 그래야 한다." 학자들은 이 메모에 대해 많은 가설을 제시합니다. 베토벤의 ‘고뇌에 찬 물음’이라는 의견에서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가정부에게 월급을 주어야 하는가?’라는 의견까지 다양합니다. 로즈 감독은 이 메모에 얽힌 내용을 영화의 스토리 전개를 통해 매우 설득력 있는 연출로 그려냅니다.

 

영화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의 삶이 소재인만큼 음악에 남다른 신경을 쓴 것이 엿보이는데 지금은 타계한 헝가리 출신 거장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 경이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바이올린 기돈 크레머, 피아노 머레이 페라이어, 첼로 요요마 등 최고의 음악가들이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 역에는 게리 올드만이 주연을 맡아 광기 어린 명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리 올드만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배우인데 더 이상 적임자가 없을 정도로 베토벤의 괴팍한 성격 묘사와 내면연기 등을 완벽히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입니다. 영화에서 듣는 사운드는 페라이어의 연주를 더빙한 것이기는 하지만 음악과 거의 일치하는 게리 올드만의 운지법과 피아노 연주 실력은 마치 그가 실제로 연주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훌륭합니다.  

 

편지의 불멸의 연인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추측만 무성했다가 20세기 미국의 학자 메이너드 솔로몬에 의해 밝혀지게 됩니다. 솔로몬은 55년에 걸친 노력 끝에 안토니 브렌타노를 불멸의 연인으로 지목했고 문헌 자료와 정황 증거에 의해 그의 주장은 이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브렌타노는 비엔나 출신 외교관인 요한 멜키오 폰 비르켄슈톡의 딸이자 상인이었던 프란츠 브렌타노의 아내로 베토벤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미 네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브렌타노 부부와 좋은 우정으로 만남을 시작한 베토벤은 점차 브렌타노 부인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 사랑을 실현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이지만 우정을 나누는 친구의 아내였기에 베토벤은 그녀 곁에 머물 수 없었지요. 그래서 베토벤은 결국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키려 마음먹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냅니다. 1823년에 작곡한 피아노 곡인 ‘디아벨리 변주곡 작품 120’은 불멸의 연인이었던 안토니 브렌타노에게 헌정되었고 당시 베토벤이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너의 예술 안에서만 살아라. 이것만이 너의 유일한 실존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 은 베토벤의 음악적인 면보다 그의 여성 편력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은 있지만 훌륭한 음악들과 더불어 평범하지 않았던 삶을 산 천재 작곡가 '베토벤'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명작으로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 작품 120 중 테마와 제1변주

https://youtu.be/VXLpzWqGe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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