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다.
길고 추운 겨울이 또 시작이 되었다. 누가 그러는데 본인이 태어난 계절을 좋아한다고.. 나는 겨울에 태어났는데도 겨울이 너무 추워서 싫다.
어제도 잠자리에 들기 전 남편에게 내가 잠들기 전까지 같이 누워 있어 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했다.
남편은 항상 친절히 응했다. 숨소리를 듣고 있고 살 냄새를 맡고 있으면 그래도 잠이 온다. 가슴 두근 거림과 답답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나외에 숨을 쉬고 있는 생명체가 옆에 있다는 따뜻함이 나를 조금은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대로 잠든 후에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매일 밤 잠들 때마다 나를 잠식시킨다.
그렇다면 아침에 눈을 감은 나를 보고 내가 가장 사랑 하는 사람이 얼마나 놀라겠는가.. 내 모습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있겠지.. 나 편하자고 또 다른 사람에게 지옥 같은 트라우마를 만들어 줄 수는 없는 일이지.. 또다시 생각을 고쳐본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면 12시 씻고 토토와 금동이를 보살펴주고 밥을 주고 잠시 쓰다듬어 주고 2시가 다 되어 잠이 든다. 아침까지 계속 잠을 잤으면.. 간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아 본다.
3시에 눈에 떠진다. 가슴이 두근 거린다. 한숨이 난다. 그래도 다시 잠을 청한다.
4시에 눈이 떠진다. 뒤척이며 다시 잠을 청한다. 4시 반이다. 5시다. 6시다.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다.
이 방에서 나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잠자는 신랑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나와 강아지 두 마리와 집 앞 산책을 나간다. 애들은 그저 신이 나 있다.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가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두꺼운 파카와 모자를 눌러쓰고 배변봉투를 챙기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애들에게 끌려 천천히 걸어간다.
그래도 아침공기가 나쁘지 않았다. 크게 숨도 쉬어보고 목도 돌려 보고 애들이 충분히 주변 냄새를 맡도록 기다려 주고 잠시 벤치에 앉으니 우리 코카스파니엘 토토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토토는 11살인데 항상 내 얼굴을 보고 표정을 읽으려는 듯 잘 쳐다본다. 한 숨을 한번 크게 쉬고 옆에 앉은 토토를 잠깐 보고 있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막힌 응어리가 있어서 빠져나갔으면 시원할 것 같기도 한 마음이었는데 생각처럼 시원하지는 않았다. 토토를 안고 한 참을 울었는데 토토도 뭔가 느끼는지 평소 안기기를 싫어하는데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 고마웠다.산책을 마치고 들어오니 약간은 후련했다.
하지만 오늘도 또 바뀌지 않는 하루가 또 시작이 됐구나.
드라마틱하게 모든 것이 제로가 되어 다시 시작하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하루하루를 버티고 막아내고 살아내면 쌓이고 쌓여 몇 시간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고 드디어 이 긴 터널에서 빠져나가는 날이 오겠지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현실은 조용한 점심시간을 보내고 또 다시 가슴은 두근거리고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그려지는 확실하고 선명하며 불행한 미래가 조금씩 다가오는 것 같아서 미칠 것만 같다.
가게 앞 통 창으로 보이는 밥집에 손님이 가득하다. 밥을 다 먹고는 늘 커피를 마시러 왔는데 그냥 간다..
따라 나가 다른 커피숍에 가는 것이 아닌지 그냥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인지 지찔하게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진짜 멍청하고 한심하다. 손을 잡아끌고 올 수도 없는데 무슨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해가 지고 긴 낮이 지나갔다.
이제 더 힘든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도 없고 낮에 손님을 다 맞이 한 가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일찍 문을 닫고 휴식을 취하러 간다.
나는...
나도 그냥 문을 닫고 갈까...
손님이 올까...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데 힘이 없다.
자리에서 못 일어나겠다.
생각을 해내야 하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놔 버리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