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방법
마담프루스트의 비밀정원 - 내면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방법
10년 전 이 영화가 개봉할 때 영화관에 가서 다섯 번을 봤었다. 유머도 너무 좋고 음악도 좋다. 전하는 메시지도 감동적이다.
당시 가족들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이 영화를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었다.
폴의 아버지 '아틸라 마르셀' 그리고 '마담 프루스트'
등장인물 이름들을 보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모티브로 한 영화임을 알 수 있다.
마르셀 푸르스트는 불멸의 명작인 프랑스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소설가 이름이다.
그리고 책에서 등장하는 프루스트 효과는 어떤 촉감, 감각, 미각등이 강렬함을 촉발시켜 잃어버린 기억을 무의식 속에서 찾아내 떠올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인데? 먹어본 맛인데? 본 것 같은 풍경인데? 와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이 느낌들은 모두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던 과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는 현상인 것이다.
책에서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마들렌이다.
폴도 프루스트 부인이 준 마들렌과 요상한(?) 허브차를 마시고 무의식 속의 기억을 떠올린다.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있다. 성인이 되었지만 부모님 품에서 지내며 독립하지 않는 자식들을 말한다.
세계적인 불황과 동시에 어느 세대나 심각한 취업난은 부모님 품에서 떨어지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옛날은 모르겠으나 내가 30년 간 살면서 취업난이 해소되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영화 속 주인공 폴은 어렸을 적 부모님을 두 분 다 여의고 이모들과 함께 살고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폴은 그 자리에 있었고 그때의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렸다.
피아니스트인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수상경력이 없고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치며 생활한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이모들이 사준 슈게트 먹기, 공원 산책이 전부이다. 폴이 바로 요즘의 캥거루 족이 아닐까.
이모들은 폴이 햇빛을 쬐며 아침 햇살을 즐기고 있는 와중에 무심하게 피아노 뚜껑을 올려서 햇빛을 차단해 버린다. 실어증에 걸린 그는 이모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피아노를 친다. 폴은 이 집에서 주체적인 존재가 전혀 아니다. 실제로 폴은 미성숙하기도 한데 파티에서 어린아이가 자신인 슈게트를 뺏어 먹는 걸 보고 빈정이 상해하는 모습은 폴의 미성숙함을 보여준다.
이모들은 폴의 아버지 아틸라를 아주 싫어했다. 이모들의 영향과 본인의 왜곡된 기억으로 폴의 기억 속의 아버지는 폭력적이다.
두 분 다 존재하지 않으니, 왜 그랬냐고 책임을 묻고 따질 수도 없다. 이 기억들은 폴을 계속 괴롭힌다.
성인이 되어서도 악몽을 꿀 정도로 심각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다.
증오심 때문에 생일 때 이모에게 받은 부모님의 사진에서 아버지만 가위도 도려낼 정도로 그 미움이 깊다.
우연히 푸르스트부인의 집을 방문하게 된 폴.
어딘가 살짝 무례하긴 한데 왠지 모르게 함께 있으면 편안한 프루스트 부인..
그리고 푸르스트 부인의 도움으로 기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폴이 무의식 속에서 떠올리는 기억들은 아주 비현실적이다. 연출도 환상적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할 때 있는 그대로를 기억하지 않는다. 특히 무의식 속에 오래 있던 기억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때문에 어쩌면 이 기억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폴은 좋고 행복한 기억만 마주하지는 않는다. 안 좋은 기억을 마주하며 괴로워도 한다.
작가 프루스트는 기억을 약국이나 실험실 같다고 이야기한다.
"어쩔 때는 진정제가 잡히기도 하고, 어쩔 때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영화의 주제는 '네 인생을 살아'이지만 그 의미가 다른 이의 말은 무시하고 네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아 라는 의미로 편중되어 있지 않다. 프루스트의 영업소에 들리는 의사는 박제를 좋아하지만 소질이 없다. 나중에는 그것을 깨닫고 순응한다. 이처럼 '네 인생을 살아'라는 의미는 복합적으로 해석된다.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것도 인생을 사는 것이다. 꿈만을 좇는 것이 삶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해결책이 아닌 것처럼.
푸르스트 부인의 마지막 메시지를 보고 용기를 내어 남은 기억을 찾는 폴. 그는 결국 트라우마를 이겨낸다.
폴도 드디어 웃으며 행복한 삶을 살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고 기억은 왜곡된다. 그래서 폴이 꺼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오해든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사실은 폴과 폴의 어머니를 아주 사랑했던 아버지 아틸라 마르셀. 그는 그저 자유롭고 열정적이었던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초반에 아틸라 마르셀이 그랜드 캐년을 보는 모습은 그가 자유로운 사람임을 나타낸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폴이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본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 나쁜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왜곡된 기억이든 상관없다. 어떻게든지 각자 본인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은 폴의 생일파티 때 선물을 주는 장면인데 모두 피아노에 관련된 것이지만 맹인 조율사만 피아노와 관련 없는 디저트 접시를 준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폴의 마음을 잘 알았던 사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