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회사는 구내식당에서 3끼가 제공되는 회사였다. 나는 자취를 하면서도 회사 식당에서 3끼를 다 먹으면서 한 달에 평균 200만 원의 돈을 1년 반 동안 저축했다.
이직할 때 즈음 내 수중에는 사천만 원 이상의 돈이 생겼다. 정말 지독하게 모았다.
초년생치고 나쁘지 않은 저축률이다. 지금도 사치는 전혀 하지 않으며 재테크 및 부동산에도 관심이 많고 적당한 비중으로 적금과 주식을 하고 있다. 그 당시 남자 동료들은 나를 이렇게 평가했다.
'시집 잘 가겠네. 남자보다 돈 잘 모으네. 보통 여자들은 돈 안 모으던데.'
내가 돈을 모으는 이유는 명확하다. 내 명의의 집을 사기 위해서다. 그분들은 칭찬의 의미로 이런 말을 했겠지만 칭찬으로 받아들이긴커녕 조금 기분이 나쁘다. 왜 돈을 모으는 이유가 꼭 결혼을 하기 위해서로 귀결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나는 노년에 돈이 없는 비참한 상황은 만들기 싫다. 누군가에게 기대어야 하는 상황이 싫다. 이 돈은 혼수와 같은 감가상각 높은 물건을 사기 위함이 아니다.
좀 더 정확히, 솔직하게 이야기해볼까?
이혼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이혼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결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결혼을 한다면 평생 잘 살거나 이혼을 하거나 두 갈림길로 나누어질 텐데, 평생 잘살면 베스트. 그런데 만약 이혼한다면?
결국 이 돈은 온전히 내 평온한 미래를 위한 돈이라는 것이다. 내가 돈을 악착같이 모으는 것에 대해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여자는 돈 잘 안 모으던데'라는 구시대적 발언을 하는 인간들은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왜 너무 차갑게 느껴지나? 요즘 같은 세상. 누군가에게 온전히 의지하며 사는 시대가 아니다. 이미 누구나 다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불행히도 평생을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 생각은 이렇다. 나이에 급급해서 결혼을 서두르고 싶지도 않고, 돈을 결혼식이나 혼수, 예물, 드레스와 같은 것에 써야 하는 게 너무나도 아깝다. 나는 차라리 혼자 살 것이다.
결혼이란 제도는 믿지 않는다. 흔히 영원이라고 포장하는 사랑은 변하는 것이라 믿는다.
감정은 한순간이다. 내 의견을 지지해주지 않는 사람이랑 같이 살 필요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남자 친구에게도 결혼을 기대하며 하게 되는 헛된 상상을 안 하게 되었고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다.
이 연애의 결실은 헤어짐이겠지만 그 순간이 올 때까지는 잘 사귀어보자고, 우리가 사귀기 직전에 한 이야기이다. 허무하고 얻는 게 없을 수도 있다. 설렘은 느끼면서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관계로 비칠 수 도 있다.
어쩌면 바로 이 시점에 결혼하는 게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
근데 하든 말든 뭐 어떤가. 나는 내 인생 하나 책임지는 것도 아주 아주 많이 많이 힘이 들고, 사실 나는 속이 좁아서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되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 계속 저축을 할 것이고 스펙을 쌓을 것이고 연봉을 높일 것이고 내 집 마련을 한 후, 어느 정도 현금을 비축해놓고 프리랜서로 전향하여 아침에는 모닝커피와 반려견과 함께 이메일을 확인하는 삶을 살 것이다. 내가 상상하는 나의 미래 속에는 아직 남편의 존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