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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뚜 May 28. 2021

난임 일기

#4

한때 유행했던 kbs 주말 드라마 ‘한번 다녀왔습니다’의 주인공 가족의 가훈은 ‘아끼면서 살자’이다. 주인공 집을 배경으로 나올 때마다 걸려있던 가훈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나도 다음날 바로 프린트를 해서 냉장고에 붙일 만큼 나에게 돈이라는 것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물질이다. 나도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돈돈 거리면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어렸을 때도 그런 기질을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회사에 도시락도 싸가고 커피도 웬만하면 사 먹지 않고 최대한 아낄 수 있는 걸 아끼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모토였던 나에게 최근 한 달 사용한 카드값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기를 가지는 것도 결국은 돈 때문에, 하루라도 더 젊고 벌 수 있을 때 많이 저축하고 투자해서 시드머니(seed money)를 늘리자는 것 때문에 미루고 미뤘는데 결국 난임을 인정하고 최근 난임센터를 방문해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몸도 지치고 힘든데, 내 돈도 많이 들어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축적된 것 같다. 거기에 정부지원도 못 받고 100프로 사비로 시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 부담감에 대해 정부지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을까 한다.

나의 이 스트레스를 알아차리는 사건이 있었는데 최근 회사 사람들과 점심시간에 점심을 다 같이 먹고 시간이 남아 근처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도 사고 사진도 예쁘게 찍고 날씨도 좋아서 점심시간에 잠깐 나온 게 힐링이 됐다며 다들 신이 나서 차를 타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있는데 좁고 양쪽에 주차되어 있는 도로에서 차를 만나서 비켜주다가 주차되어 있는 차를 박았다. 내가 박은 것은 아니지만 함께 차에 타고 있었고 운전이 미숙했던 사람에게 계속 후진을 하라고 얘기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차를 빼서 확인해보니 살짝 콩 박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차는 작정하고 찾아보지 않는 한 흠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앞 범퍼를 다 갈고 월요일에 사고가 났는데 왜 수리를 주말을 껴서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수리하는데 3일 걸리는데 주말도 껴서 5일을 렌트를 해서 거의 보험료가 300만 원 정도 나왔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그 사람 언젠가 똑같이 당했으면 좋겠다며 내면에서 깊은 분노가 느껴졌다. 원래는 자기 부담금이 나오면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 다 같이 얼마 정도 같이 부담해주자는 얘기를 했는데 전부 보험처리를 했다는 소리를 듣고, 운전자가 없을 때 ‘우리가 얼마를 부담해줘야 되는지 애매해졌다 얼마를 부담해줄까?’라는 얘기가 나왔다. 자기 부담금도 없고 얼마를 부담하는 게 적절한지 고민되는 상황에서 집에 와서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공동의 책임으로 부담을 같이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본인도 회사에서 사고가 났는데 보험처리 안 하고 공금으로 처리했던 것을 얘기해주며 아무것도 안 해주기에는 좀 마음이 쓰이지 않냐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너무 세상 사는데 모든 가치를 ‘돈’에 두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식상해서 하고 싶지 않았던 얘기지만, 이 세상에는 돈보다 가치로운 것들이 훨씬 많은데 난 왜 그걸 그동안 깨닫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좀 더 가치를 둘 것은 돈보다 그래도 내가 동료라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관계이지 않을까 하니 부담이 좀 덜어졌다. 내가 아기보다 돈을 가치롭게 여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아이를 만나고 싶고 임신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져 찾아오는데 2년이나 걸린 난임센터에 찾아왔지만 카드 명세서를 보며 나는 당장 눈앞에 가치에 휘둘려 내가 가장 가치롭게 생각하여야 할 것을 놓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내가 가장 약해지는 부분은 ‘금전’ 즉 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계기였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어디에 가치를 둬야 행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나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내가 알 수 없고 내가 선택한 대로 흘러갈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가치롭게 생각할 것이 무엇인지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내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마음은 아프지만 극심하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선택한 내 인생은 아이를 만나는 것에 중점을 두었으니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아이를 만나는 것을 가장 가치롭게 여겨야겠다 다짐하는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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