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뚜 May 22. 2021

난임일기

#3

 최근 내가 주로 경험하는 감정은 화, 초조함, 두려움 등 이런 감정이 주를 이룬다.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컨트롤하려고 하지만, 늘 한계에 부딪히고 무언가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표출을 하곤 하는데 그게 보통은 남편에게로 화살이 향한다. 나도 이런 나의 모습이 미성숙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화가 나는 그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욱 내질러버린다. 최근 난임센터를 다니고 난 이후로 몸도 힘들고 경제적 지출도 부담되기 때문인지 더 예민한 모습의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를 지배했던 감정들”

 

* 검사를 받고 시술까지도 생각하는데, 우리 부부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난임시술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30대 이상 부부가 난임 지원을 받을 텐데 그럼 둘 중 하나는 일을 하지 않아야 지원이 가능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건강보험료는 내라고 하는 만큼 다 내는데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에 대해 뭔가 억울하기도 하고 정부가 출산 장려정책을 추구한다면 소득에 상관없이 다 지원해주거나 지원 소득범위를 더 넓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이를 만나고 싶지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난임센터에 검사를 받으러 처음 갔는데 나는 왜 처음 보는 산부인과 진료가 난임센터여야 하는가에 대해 일차적으로 화가 났고, 두 번째는 다른 예비 산모들은 남편과 같이 와서 검사를 받는데 왜 나는 왜 남편 없이 여기 혼자 이렇게 덩그러니 앉아 있나 화도 나고 처량하기도 했다. 그리고 피를 뽑고 나오니 뭔가 허망하고 배도 고파서 서러움이 몰려왔다.


 * 난임센터에 예약을 위해 연락을 했는데 생리 시작 이후 2-3일 후에 처음 오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리 예정일이 되어도 생리가 시작되지 않아서 너무 초조해졌다. 그리고 예정일이 지난 이후 2일 정도 지나고 생리를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에 ‘나는 왜 시술을 받기 전 검사를 하는 것조차 힘이 들까’ 라며 스스로 비관적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 배란 검사를 받기로 하고 하루 전 눈치 보이지만 휴가를 썼다. 그전에 의사 선생님께 내가 생리주기가 일정한 편이긴 한데 35일 정도로 남들보다 더 주기가 긴 편이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그냥 보통 다른 사람들은 첫 배란일 이후 2주 정도 지나고 배란을 하니 그때 정해준 날짜에 와보라고 하셔서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갔더니 초음파를 본 결과 역시나 아직 난모세포가 자라지 않아서 4일 정도 후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좀 허무하고 화가 나서 제가 어플을 보고 생리주기를 예측하는데 거의 이게 맞았었다고 말했더니 “어플이라는 것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플에서는 언제 배란이 되는 것으로 나왔어요?”라고 물어보셔서 배란일을 보여드렸더니, 그건 너무 늦으니 4일 후에 다시 와보라고 하셨다. 사실 4일 이후도 나는 너무 빠른 것 같긴 했지만 일단 수납을 하고 다시 예약 일정을 잡고 나오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보통 배란 검사는 2-3번 정도 나오셔서 초음파 보시곤 하세요’라고 너무 간단히 얘기하는데 나는 휴가도 쓰고 내 돈도 쓰면서 진료를 보는데 저 사람들은 저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는구나, 라는 생각에 또 화가 났다.


 최근 2주 정도 동안 일어났던 나의 감정 변화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남편에게 “나 아무래도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아. 나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라고 말을 했다. 요즘 스스로 이렇게 감정이 격해져서 화를 내고 다니는 내 모습도 너무 싫지만, 내가 이렇게 감정에 지배를 받으면 그 감정들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미숙한 방법으로 터뜨리는 내 모습에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한 가지 경험한 것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부당함을 느꼈을 때의 화를 그 사람과 대화하면서 풀어나가야 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감정 또한 존재한다는 것과 내가 그 감정을 처리하는 것에 아직 많이 미숙하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이 감정을 남편에게만 표현하는데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감정이 아이에게 향하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도 나의 화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남편과 앞으로 태어날 나의 아기를 위해 이런 감정에 대한 알아차림과 이 감정이 누군가에게 향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야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나 자신과 조금 더 친해지기’이다.

작가의 이전글 난임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