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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뚜 May 14. 2021

난임일기

#2

결혼한 지 2년쯤 되다보니 아기가 생기지 않는 부부를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애기는 가질 생각 없는거야?’ 라고 대놓고 물어보거나 물어보지 않거나! 지금까지는 물어보면 그냥 “떡줄 놈(남편)은 생각도 안하는데, 애는 혼자 낳나요?” 라며 아직 남편이 계획이 없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그동안은 실제로 남편이 아이 생각이 없이 돈을 모으는걸 더 가치있게 생각했던 것도 있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고 자녀 계획이 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네요’ 라고 말하는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난밍아웃이 나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원래도 속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는 성격인 탓도 있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다른 사람들은 잘만 생기는데..’ 라는 생각이 나한테는 조금 더 커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다.

 이런 나에게 최근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드디어 어쩌면 자연 임신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난임센터를 방문한 일이다. 이걸 인정하기까지가 이렇게 오래 걸렸던지.. 근데 생각보다 힘이 들어서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털어 놓을까 고민을 했지만 ‘아직 검사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말자’ 라는 생각이 앞서 결국 털어놓지 못했다. ‘나 어쩌면 임신이 어려울지도 몰라 지금 난임센터 다니고 있어!’ 라는 말이 왜이렇게 나에겐 어려운지..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에게 조차 이 말을 털어 놓기가 어려워 가슴속에 담아 두고 그냥 늘 그렇듯이 실없는 농담들만 잔뜩 늘어놓았다.

 엄마는 손주가 보고 싶으신지 나에게 애기를 언제쯤 낳냐는 소리를 요즘 하시곤 하신다. 그래서 그럴때마다 그냥 ‘그건 하나님만 아신다.’ 며 넘기곤 했다. 그런데 내가 최근 난임검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마침 손주 얘기를 하시기에 ‘나 난임센터 다녀.’ 라고 내 성격상 정말 어렵게 꺼낸 그 말에 “거짓말 하는거 아니야?” 라고 했다. 그 얘기가 어찌나 마음이 상했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장난을 많이 치는 성격이긴 하지만 난 나름 심각한데 엄마가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다시는 이 문제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속상한 마음에 “그런걸로 뻥치는 사람이 어딨어??”라고 얘기했는데 엄마는 아무래도 못 믿겠는지 계속 진짜냐고 물으셨다. 2년동안 애기가 생기지 않은 딸이 고백한 난임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워 믿지 않으려고 하셨던 것도 있는 것 같아서 그동안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 이후로 엄마는 내가 센터에 가는 토요일마다 전화를 하셔서 병원에 잘 다녀왔냐고 물어보고 몸이 따듯해야 한다며 엄마가 보약을 해주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시곤 한다.

‘엄마’ 라는 존재는 참 두 얼굴이 있는 것 같다. 어쩔때는 한없이 다정하고 좋은 존재지만 어쩔때는 나에게 가장 상처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끔 ‘이럴때 엄마가 살아계시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시며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하지 못하는 것, 엄마의 부재에 그리움을 얘기 하시곤 하시며 본인은 오래 살아서 내가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을 가슴 속에 묻어 두도록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속마음을 이야기 한다는게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을 준비하며 내가 늘 고민했던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될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야 할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는데 이제 좋은 엄마에 대한 정의가 나름 생겼다. 누구에게나 성립되는 공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는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는 엄마’ 인 것 같다.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랬고, 나역시 우리 아기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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