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난임 검사를 받으러 처음 병원에 갔던 나에게 병원의 모든 풍경이 낯설었다. 병원 예약을 남편이 대신해줬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 3명의 의사 선생님 중에 다른 선생님들은 예약 환자가 10명이 넘는데 내가 예약한 의사 선생님만 대기환자가 나밖에 없었다. 의아했지만 내 이름을 호명하여 진료실에 들어갔다. 난임 검사의 종류와 앞으로 어떤 검사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간략적인 설명을 듣고, 첫 번째 검사인 채혈을 하러 갔다가 집에 가서 남편에게 다른 선생님들은 대기환자가 10명이 넘는데 오늘 내가 진료 본 분은 대기환자가 나밖에 없더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예약할 때 간호사 선생님이 누구로 예약해주냐고 물어보셔서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럼 대기시간이 제일 짧으신 ooo 선생님으로 해드릴까요? 라고 해서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다는 것을 처음 듣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듣고 그래도 우리가 아기를 갖기위해 처음으로 시도한 일인데 선택의 기준이 ‘대기시간’이였다는 것에 조금 기가 막혔지만, 나도 스스로 알아보지 않고 남편에게만 온전히 맡겼던 것에 대한 반성과 내가 그 사람을 겪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고 그저 대기환자가 제일 적다는 이유로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처음 검사를 받았을 때 인상도 나쁘지 않고 해서 다음 검사도 첫번째 진료를 받았던 선생님께 예약을 했다.
두 번째는 나팔관 조영술을 했다. 나는 내가 고통을 굉장히 잘 참는 스타일이라서 스스로를 ‘무통의 아이콘’이라고 부르며 다녔는데, 아프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무통의 아이콘인 나에게는 참을 만한 고통일 줄 알았건만,, 이건 내가 병원 진료 중 겪었던 고통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의 예로 치과 진료를 받을 때 그럭저럭 참을만해서 참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치료를 하시다가 ‘혹시 안 아픈 건지, 아픈데 참고 있는 건지?’ 치료를 멈추고 물어보셨을 만큼 고통에 강했고, 이마필러를 맞을 때도 필러의 끝판왕은 이마라고 할 정도로 엄청 아프다고 들었지만 난 거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이 정도면 매일매일 맞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랬던 내가 정말 최 극강의 고통을 경험했는데 그건 바로 “나팔관 조영술”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느꼈던 고통은 갑자기 내 몸에 콘크리트가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처음엔 죄송한데 못하겠다고 하고 나올까 엄청 고민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참을 만 해져서 간신히 검사를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검사가 끝난 후 진료실에서 다시 의사 선생님을 봤고 지난주 피검사를 했던 결과를 알려주셨다. 검사했던 내용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해주셨고 다른 건 문제가 없는데 마지막에 ‘프로락틴’ 수치가 정삼 범주보다 2배 정도 높은 수치가 나왔다고 얘기를 해주시면서 ‘프로락틴이라고 잘 아시겠지만~’이라고 이야기를 해주면서 정말 끝까지 설명 안 해주고 수치가 좀 높은 편이고 이에 대한 약을 처방해주겠다고만 이야기했다. 프로락틴 수치가 높으면 배란이 방해가 돼서 임신 확률이 떨어진다고 짧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왜 대기 환자가 나밖에 없었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주 난임 검사 세 번째인 배란 검사를 위해서 병원에 나오는 날짜를 잡는 중에 보통 생리 시작일 이후 2주 정도 후에 배란이 되니까 언제 올 수 있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그래서 나는 생리주기가 35일 정도여서 어플을 보면 배란이 늦게 되는 편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내 얘기를 듣지 않고 또 보통 사람들은 ~의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보통 사람의 범주에 나를 대입시켜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나도 그래도 의사인데 나보다 잘 알겠지 하고 그냥 말을 듣고 그때 오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주말이 지나고 다시 산부인과를 찾았다. 초음파를 봤는데 원래는 난모세포가 2cm 정도 자라야 하는데 지금 1.1cm 정도밖에 안 자랐으니 주말에 다시 오라면서 또 보통 사람들이 생리 시작일 이후 2주 정도 있다가 배란이 된다~~ 라는 얘기를 시작으로 말을 이어갔다. 듣다가 너무 답답해서 제가 생리가 35일 주기라서 보통 28일 정도 주기인 사람들과는 안 맞는다고 말씀드리니 내 얘기를 들은 체 만 체 해서 또 오라고 한 날짜에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너무 화가 났다. ‘아니 왜 사람 말을 끝까지 안 들어?’라는 생각에 너무 분노가 올라왔다. 처음부터 내 얘기를 잘 들어줬으면 내 휴가도 돈도 안 날렸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예약한 날짜에 다시 갔을 때 아직 난모세포가 다 자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자라고 있고 자궁 내벽이 두터워지는 걸 확인한 후 이틀의 숙제(배란일 성관계)를 받고 난임 검사는 끝이 났다.
마지막에는 그래도 나름 마무리가 잘 됐지만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조금만 더 설명을 잘해주셨으면, 조금만 더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매일 환자를 보고 진료를 하는 의사 선생님들은 내가 그냥 수많은 환자 중에 한명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나를 특별한 환자로 생각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내가 선생님한테 수많은 환자 중 그저 한 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그 생각을 좀 감추며 나를 대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프로락틴 수치에 대해서 ‘그게 뭔데요?’라고 묻지 않은 것도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순간의 부끄러움이 생겨서 그냥 아는 척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순간 물어보았으면 어쩌면 이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까지 불쾌한 감정은 아녔을지도 모르겠다. 검사가 끝난 후 남편과 하루하루 흘러가는 한 달의 한번 돌아오는 그 주기가 참 귀한 시간이었음을 깨닫고 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제 남 탓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리지 않고, 내가 스스로 후기도 많이 읽어보고 제대로 알아보고 가야겠다는 느꼈다.
한-두 번 만에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고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서 이제는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의 결정을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지치지 않고 꾸준히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며 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리고 어쩌면 의사 선생님을 나쁜 의사로 만들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편견과 핑계가 아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정말 의사 선생님을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이 가는 동역자로서 마음을 다잡고 좋은 생각하고 몸과 마음을 꾸준히 잘 관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