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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뚜 Jun 13. 2021

난임 일기

#6

난임 검사를 마친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갖기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고 결국 인공수정을 결정했다. 우리가 인공수정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 지인들은 ‘아직 그렇게 시도할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2년 동안 시도했는데 안 됐고, 그렇다면 더더욱 하루라도 빠르게 가야지 성공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되어 결정하게 됐다고 이야기를 하고 회사에도 그렇게 양해를 구하려 했으나, 처음에는 다들 좋은 마음이고 잘되기를 바라겠지만 결국 시간이 길어지면 내 할 일이 자기가 할 일이 되기에 이해해주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난임시술을 하면 병원을 자주 가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시술은 검사를 받았던 집 근처 병원이 아닌 회사 근처의 병원에서 하기로 남편과 상의 후 병원에 연락해 모닝 진료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최대한 모닝 진료 시간을 활용하여 병원에 가기로 했다.

최근 1년 동안 회사에서 겪었던 일들이 힘들어 이직을 위해서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가슴에 사표를 품고 채용사이트를 거의 하루에 한 번은 들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집과 더 가깝고 처우도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공고가 난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 후 이직을 결정하고 자기소개서를 거의 반 이상은 작성했는데 갑자기 드는 생각이 ‘아 맞다! 이직하면 나 시술은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적응하기에 힘들어 시술을 받으러 가기 위해 휴가를 쓰거나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직을 하면 시술을 당분간 미뤄야 된다고 판단이 됐다. 처음에는 이직을 적극 찬성하고 지지해주던 남편이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했는지 그렇다면 올해 우리가 중점을 두는 것이 ‘자녀계획’이니까 이직을 조금 미루는 것을 어떻겠냐고 했고 나도 그것이 걸려서 선뜻 결정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작성하던 자기소개서를 지웠다. 반 정도 채워진 자기소개서를 지우며 드는 생각은 엄마로서의 삶에서 포기해야 할 것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이 일화를 얘기했더니, 그게 뭘 포기일 거까지 있냐고 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포기한 건데 꼭 그렇게 얘기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는 엄마로서 포기해야 했던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내린 이 결정이 무의식적으로 작게 보였기 때문이 아녔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엄마한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해지기도 했다.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다녀오는 사람들에게 오는 고비가 있는 것 같다. 6개월-1년은 어떻게든 버티지만, 그 이후로 아이도 자주 아프고 엄마랑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며 직장인으로서 내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 있어주는 선택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난임 검사를 받고, 시술을 받으며 병원에 가야 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 잠시 일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나는 아이를 갖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를 가지고 임신한 채로 회사에 다니는 엄마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침에 급하게 출근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엄마라는 것은 참 위대한 역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역할을 내가 버거워해서 억지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든, 아니면 즐겁게 기꺼이 그 역할을 수행하든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나의 모든 모습과 친해지고, ‘꼭 잘 해내야만 해!’ 하는 부담감으로부터 좀 벗어나면 한결 마음이 편해져서 더 여유로운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내 모습은 시술을 통해서 아이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직장인으로서 역할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직장에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어느 것 하나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심쟁이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신세 좀 지면 어때’라는 생각이 직장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예비엄마에게 아직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와 아이를 기다리는 남편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실패한다면 엄마로서의 삶 또한 그렇게 떳떳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인지적 오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주식 명언이 생각난다. 엄마로서의 삶,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고 분산해서 담아 명백히 두 역할은 다른 역할이고 하나로 생각하지 말아야 서로의 역할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인 여성이 엄마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다들 이야기한다. 식상하고 또 식상하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이 더 크다’라는 말에 나도 언젠가 꼭 공감하고 싶고, 그 행복을 느낄 날들을 기대하며 오늘도 직장에서 잘 버티고 있는 나를 포함한 예비엄마, 엄마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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