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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뚜 Jul 02. 2021

난임 일기

#9

인공수정 시술을 받고 피검사(임신 검사) 받으러 가기 이틀 전, 결국 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첫 소변이 가장 정확하다고는 하나 남편이 오늘 아침 시험을 보러 갔기 때문에, 결과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 같이 싱숭생숭할 수는 없어서 남편이 간 후 조용히 검사를 해봤는데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한 줄 밖에는 확인할 수 없었다.

피검사가 가장 정확하다고 하나 나는 임신테스트기를 맹신하고 거의 임신이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하고 집에서 거의 세상 끝난 것처럼 울었다. 그리고 겨우 마음을 다스리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나 안된 것 같아.’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속상했겠다.’ 고 말씀해주셨다. 이제 진정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다시 눈물이 나왔다. 엄마가 기도해준다는 말과 함께 통화를 마치고, 시험이 끝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임신테스트기를 한 이야기를 해줬는데 확실하지도 않은걸 왜 해봤냐면서 피검사 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하며 자기가 그렇게 힘들어하면 나도 힘들다고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이건 우리 두 사람의 일인데 그럼 난 힘들다고 어디에서 털어놔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인공수정의 확률이 자연임신과 똑같아서 1차에 성공하는 건 거의 로또 수준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나에게 그런 확률이 한 번쯤은 찾아오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런 절망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상쾌함이 나에게 찾아왔다. 2주 동안 나의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결과를 알지 못해서 나는 그게 더 답답하고 그게 나를 더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극초기 임산부 증상’을 찾아봤다. 미열, 복통(착상 통), 가슴 아픔, 소화 안됨, 착상혈 등등 이 증상들을 나에게 끼워 맞췄다. 아침저녁으로 하루 2번 열을 재고 정상 체온이 나오면 조금 더 높은 체온이 나올 때까지 다시 측정했다. 그리고 소변을 자주 봤고, 소화가 잘 안됬으며 배가 가끔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임신테스트기를 해보기 전까지 내가 느낀 몸의 컨디션으로, 난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테스트기의 한 줄을 본 순간 거짓말처럼 내가 집착하던 이 증상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컨디션도 꽤 좋아지고 갑자기 소화도 잘 됐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상담을 공부했지만 그동안 신체화 증상이 대해서 학문적으로만 ‘아 이런 증상이 있구나’라고 이해를 하며 넘겼다. 그리고 왜 상상 임신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만큼 너무 아이를 바랐고, 간절해서 심리적인 요인으로 내 몸이 만들어낸 증상이었다. 신체화, 상상임신 이런 심리적인 요인이 내 일상을 지배할 만큼 큰 일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고, 내가 앞으로 만날 내담자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도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 평생 임신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나를 힘들게 하고 또 내 마음이 감정의 지배를 받는 순간에는 눈물을 멈추기가 어려웠고 나보다 결혼도 늦게 한 주변 지인들이 다 임신하고 나만 못하면 어쩌지?라고 끊임없이 나에게 절망적인 상상을 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생보다는 지금이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20년 후 돌아봤을 때, 아무 시도도 하지 않은 나보다는 그래도 아이를 갖기 위해 시술을 시도했던 나를 조금 더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희망과 절망 그 사이 어디쯤에서 배회하고 있는 나에게 ‘그때 그래도 그렇게 하길 잘했어.’라고 먼 미래의 내가 나를 돌아볼 것이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희망의 빛 한 가닥이라도 찾자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산부인과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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