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난 스트레스 안 받아! 이제 몇 번 해봤다고 좀 괜찮아졌나 봐!"라고 남편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나도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을 했는데, 일상에서 보이는 모습에서 그게 그냥 내가 나에게 거는 일종의 주문 같은 느낌을 받았다.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데,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을 하니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이 감정이 감당이 되지 않으니, 내 옆에 있고 가장 만만한 상대인 남편에게 감정을 나도 모르게 쏟아붓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꼭 남편을 죄인을 만들어야 했다.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가서 꼭 화를 내게 만든 다음 '오빠가 나한테 화냈잖아.' , '오빠가 나 삐지게 만들었잖아.'라고 남편을 죄인 만들기의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남편은 졸리거나 잠이 덜 깼을 때 괴롭히거나 건드리면 평소의 모습과 다른 게 심하게 화를 내는 편인데 이번에도 내가 남편이 잠이 덜 깼을 때 남편을 툭툭 치고 건드려서 남편이 화를 냈다. 나는 그 모습에 삐져서 엎어져서 누워있었더니 남편이 출근하기 전 밥을 먹자고 미안하다며 이렇게 자면 이따가 잠 못 잔다고 나를 풀어주기 위해서 왔다. 그런 난 또 거기에 대고 "오빠 때문에 그렇잖아!"라고 얘기를 했다. 순간 '아 이건 좀 아닌데'라고 느꼈지만 멈추지는 못했다. 다음날 남편이 야간 근무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전날의 앙금이 나도 모르게 조금 남아 있어서 '나 집 나갈 거야'라고 얘기했는데, 남편도 좀 화가 났는지 '나가서 들어오지 마'라고 했다. 그래서 순간 그 말에 울컥해서 응 잘살아 이러고 방문을 열고 나갔고, 잠시 후에 방에 들어와서 남편이 보고 있던 아이패드를 뺏고 방에서 옷이랑 속옷이랑 양말을 챙겨서 나가는데 보다 못한 남편이 '아 그만 좀 해'라고 얘기를 했고 나는 그 말을 못 들으 척하고 다 가지고 나왔다. 일요일이었다. 당장 나가고 싶었지만 예배를 드릴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예배를 드리고 나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를 가야 하는데, 대면 예배가 불가능해서 집에서 예배 시간을 기다리며 성경을 쓰고 있었다. 순간의 감정과 공간에서 벗어나 혼자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가 주말 동안 남편이랑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되었다. 결국 이 갈등의 주된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먼저 시비를 걸며 짜증 나게 만든 다음 내가 삐지고 '너 때문이잖아!'라고 이야기하며 남편을 죄인 만들었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니 남편도 지치고, 나도 지쳤다. 어쩌면 진작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 멈추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감정이 먼저 앞섰다. 이렇게 반성을 한 후 남편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자기는 꼭 나를 죄인을 만들고,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게 만드는 것 같다'라고 얘기를 했다. 같이 잘 이겨내자고 다짐했던 우리의 관계를 힘들게 했던 것은 스트레스를 핑계로 내가 만들어낸 끊어지지 않는 관계의 패턴이었다. 이 갈등의 끝은 이 패턴을 내가 언제 알아내고, 통제가 가능하냐일 것 같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관계를 통해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나는 난임시술을 하면서 우리 부부 관계의 갈등에 대한 두려움도 걱정을 했는데, 결국 이 갈등도 내가 만들었고 나의 스트레스를 조금 더 올바르게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관계에서의 솔직한 대화가 중요함을 깨달은 연휴였다.